현대엘리베이(017800)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 홀딩스의 지분 매각 공시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쉰들러와 특정 사모펀드(PEF) 사이에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매매 시점이 묘하게 겹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추려 했다는 주장도 있어 금융감독 당국의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열리는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내용의 질의를 이복현 금감원장에게 할 예정이다.
윤 의원실에 따르면 쉰들러는 2013년 11월 장내 거래(매수)를 한 이후 10년 가까이 지분 매매를 하지 않았다. 그랬던 쉰들러가 6월19일부터 8월28일까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117만 주(2.99%)를 장내 매각했다. 같은 기간 한 PEF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08만7235주(2.78%)를 시장에서 사들였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적대적 인수 시도를 진행하고 있는 쉰들러가 앞으로는 팔고 뒤로는 (사모펀드를 시켜) 되산 것 아니냐”며 “곳곳에 통정매매 의혹이 있는 만큼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시 혼란·사모펀드 저가매수 지원 추정 금감원 조사 나서야”…쉰들러코리아 “한국 법인, 지분 문제 관련 안 해 내용 전혀 몰라”
의혹 제기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6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쉰들러는 6월19일 1만7599주를 판 것을 시작으로 매각을 지속하면서 6월21일 지분 1% 이상 매도에 따른 공시의무가 처음 발생했다. 이후에도 주식을 계속 내다 팔면서 8월28일까지 117만 주를 매각했다.
특히 쉰들러는 주가가 크게 오를 때면 대규모 물량을 시장에 내놓았다. 7월20일 연기금과 금융권의 매수세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이 주당 4만3800원까지 오르자 이날만 4만6608주를 쏟아내면서 주가 상승세가 크게 꺾었다. 그럼에도 8월10일 주가가 4만5000원을 넘어서자 또다시 대량 매도(7만855주)에 나섰고 추가적인 매도 가능성에 8월14일 주가는 6.73%나 폭락했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내다 팔면 경영권 인수와 반대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쉰들러는 2014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파생금융상품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 원에 가까운 손해를 입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 회장은 3월 쉰들러와 10년을 끌어온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고 회사 측에 2000억 원 대의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모두 납입했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3월 말 현재 7.83%)을 담보로 M캐피탈에서 연 12%금리 수준의 대출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2대 주주인 쉰들러가 지분을 대거 매각하면 ‘현대엘리베이터 주가 하락→대출 담보가치 하락→담보로 잡힌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시장에 나올 가능성 상승→현대그룹의 현대엘리 지배권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었다.
여기에서 거론되는 게 PEF 역할론이다. 윤 의원은 “쉰들러가 한쪽에서는 주식을 팔아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배권을 흔들면서도 나중에 경영권을 위해서는 지분이 필요하다”며 “6월19일부터 8월28일까지 쉰들러의 매도금액과 PEF의 매수금액이 엇비슷한데 나중을 대비해 주식을 파킹해 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쉰들러의 본격적인 지분매각이 시작되기 전인 3월 말 기준 현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현대엘리베이터 보유지분은 26.6%로 쉰들러(15.5%)보다 11%포인트(p)가량 많았지만 현 회장 지분의 향방에 따라서는 최대주주 자리를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쉰들러코리아 측은 언급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한국 법인은 해당 사안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쉰들러코리아는 “지분 관련 문제는 쉰들러코리아에서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본부도 아닌 본사 차원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국 법인에서는 사안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전혀 모른다”고 설명했다.
“현대엘리베이터 협력사도 흔들…중앙엘리베이터 사태 재현 되나” 불안
올 들어 쉰들러는 공시 문제로 논란이 적지 않았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지분 5% 이상 보유자는 1% 이상 변동 시 5일 내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거나 제3자가 전환사채의 전환권을 행사해 지분이 1% 이상 바뀌는 경우는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쉰들러도 여기에 해당했다. 2015년 7월 21.48%였던 쉰들러의 지분율은 2015년 주주배정 유상증자 미참여와 이후 전환사채 전환 등으로 자연스레 16.18%로 떨어진 상태였다. 다만, 예외 사항이어서 지분 변동 사항을 공시하지 않아도 됐다.
그랬던 쉰들러가 6월 들어 본격적으로 지분매각에 나서면서 6월21일 공시의무(1% 변동)가 생기자 그동안의 지분 변화를 한번에 반영해 지분율이 5.53%포인트(p) 감소한 것으로 ‘주식등의 대량보유상황 보고서’에 적었다. 다만, 지분 10% 이상 주요주주의 지분 변동사항을 보여주는 ‘임원·주요주주 특정증권등 소유상환보고서’에서는 그동안의 상황을 다 반영해 0.53%p만 줄었다고 밝혔다. 두 공시의 차이 탓에 회사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닌 일반 투자자들의 경우 쉰들러가 대규모 지분 매도에 나섰다고 오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협력사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쉰들러는 2003년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하면서 국내 진출했다. 이후 중앙엘리베이터는 명맥이 끊겼고 공장이 있던 자리에 물류센터가 건설 중이다. 충주상공회의소 측은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해 충주로 이전한 뒤 매출의 절반 정도를 협력회사와 상생거래를 하고 있으며 협력업체 근로자 5000명 이상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며 “쉰들러의 적대적인 행태가 협력사들과 지역경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H&Q가 현대 측이 발행하는 31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와 교환사채(EB),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이 안정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쉰들러 측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문제 제기되고 있는 사안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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