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은 일반인이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장르로,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등 여러 장점이 있어요. 산발적으로 열리던 인형극을 서울 서남권에서 쇼케이스 형식으로 함께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건왕 영등포문화재단 대표)
21년 만에 서울인형극제가 돌아온다. 서울 4개 자치재단(구로·금천·영등포·종로문화재단)은 한국인형극협회와 협력해 인형극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한국에서 인형극은 어린이들이 즐기는 콘텐츠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1970년대 KBS에서 방영된 인형극 프로그램 ‘부리부리 박사’ ‘명장 김유신’ 등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 199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게 제작되던 인형극은 21세기에 들어 인기가 주춤했다. 실내 공연장 위주 문화가 발전하는 상황에서 마당을 중점으로 두었던 이유도 컸다. 1990년부터 시작된 서울인형극제도 2002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20일 서울 영등포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한 이건왕 영등포문화재단 대표(63)는 종로·성북문화재단 대표를 역임하면서 묻혀 있던 인형극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했다.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가 있는 종로에서 인형극을 다시 접하게 됐는데, 영등포문화재단에 온 뒤로는 예전에 서울인형극제가 열렸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죠. 마침 같은 서남권인 구로·금천문화재단에서 인형극제를 운영 중이어서 4개 자치재단이 힘을 모아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후 서울시자치구문화재단연합회에 권역별 교류·연계사업으로 서울인형극제를 제안하면서 축제는 닻을 올리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인형극제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주요 행사다. 프랑스 샤를르빌 메지에르에서는 1961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인형극 축제로 손꼽히는 세계인형극축제가 2년마다 열린다. 한국인형극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채정규 서울인형극제 예술감독(55)은 인터뷰에서 “세계인형극축제가 재밌다고 소문나다 보니 프랑스에 인형극 연구센터, 전문 학교까지 만들어지게 됐다”면서 “아시아 일본에서도 나가노현 이다 시에서 8월마다 인형극축제가 열리면서 시민들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2001년 전용 극장인 춘천인형극장이 탄생하면서 새롭게 춘천이 인형극의 거점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
지역이 다르면 특성도 변한다. 이 대표는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서울형 인형극제’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인형극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인형극에서는 무대에서 무한하게 상상력을 풀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인형극의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이번 쇼케이스는 작게 출발하지만, 앞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고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까지 각 지역에서는 테이블인형극·그림자극·마리오네트 인형극 등 다양한 인형극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쇼케이스에서 눈에 띄는 공연은 지난 14일 종로문화재단에서 소개한 신작 만석중놀이 ‘여의주를 찾아서’다. 고려시대 연등행사에서 시작된 그림자놀이인 만석중놀이를 발굴해 가족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현대적인 유언극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외에도 다음달 금천 꼬마인형극장에서는 ‘호랑이 가(家)·방울이의 낮잠방울’, 구로 꿈나무극장에서는 ‘계단의 아이’ 등의 공연을 개최한다. 영등포문화재단은 지난 21~22일 개막 공연 ‘삐노키오’에 이어 민들레학교 지역아동센터·쪼물왕국 지역아동센터 등을 통해 찾아가는 인형극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