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가들이 이달에만 국내 주식을 2조 9000억 원어치나 팔아치우며 ‘셀 코리아’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고금리와 고환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여파로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외국인의 한국 증시 탈출 속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27일까지 유가증권과 코스닥시장에서 총 2조 9188억 원을 팔아치웠다. 월간 기준으로 올 들어 최대 규모의 순매도 액수다.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지난 8월부터 벌써 3개월 연속 ‘팔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은 8월 7540억 원, 9월 2조 2811억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매도폭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코스피시장의 경우는 6월부터 이달까지 5개월 연속 매도우위를 보였다.
최근 들어 외국인이 멈추지 않고 물량을 쏟아내는 것은 고금리·고환율 환경이 오래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올라간 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확전 양상으로 흐르는 점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 요인으로 지목됐다. 여기에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갈수록 하향 조정되는 점도 외국인의 증시 외면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국채 금리가 5%에 근접한 데다 원·달러 환율이 1350원 선을 맴돌며 외국인의 국내 증시 매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빅테크 기업의 3분기 실적이 부진한 데다 국내 기업까지 미래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외국인 자금이 빠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외국인이 이달 증시 전반에 걸쳐 ‘매도 폭탄’을 퍼부으면서도 꾸준히 매수하는 종목에 주목했다. 특히 2차전지 종목인 에코프로(086520)와 금양(001570)을 5000억 원 넘게 사들인 점에 이목을 집중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27일까지 에코프로는 3101억 원, 금양은 2044억 원을 사들여 각각 순매수 1위와 2위 목록에 올렸다. 두 종목 모두 이 기간 주가가 크게 내렸는데도 반등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는 의미다. 에코프로의 주가는 이달 4일 82만 4000원에서 27일 63만 5000원으로 23.0%, 금양은 11만 9100원에서 9만 1200원으로 23.4%씩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금양의 경우 다음달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한국 지수 편입이 유력시되면서 매수세가 몰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MSCI 한국 지수 편입 종목은 내달 15일 바뀐다.
에코프로의 경우는 공매도 상환을 위한 숏커버링(환매수) 영향으로 해석했다. 실제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고는 지난 4일 1조 6020억 원에서 25일 1조 1950억 원으로 4070억 원 줄어들었다. 전체 주식 수 대비 공매도 잔고 수량을 뜻하는 공매도 잔고 비중도 같은 기간 7.3%에서 6.5%로 0.8%포인트 낮아졌다. 25일 코스닥 상장사의 평균 공매도 잔고 비중은 0.26%로 에코프로는 여전히 이보다 훨씬 높은 상태다.
외국인은 이들 외에도 불황에도 호실적을 이어가는 기아(000270), 3분기에 D램 사업부가 3분기 흑자로 돌아선 SK하이닉스(000660)도 1190억 원, 1155억 원씩 순매수했다. 지난달부터 4개 증권사가 목표주가를 올린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도 다섯 번째로 많은 818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에 대한 증권사들의 평균 목표주가는 8만 1750원이었다. 이는 27일 가격인 5만 3500원보다 52.8%나 높은 수준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대내외 악재가 산재한 만큼 당분간 외국인들이 적극적인 매수우위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안은 지금처럼 특정 호재가 있는 종목만 선별해서 매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었다. 김 연구원은 “외국인이 국내 증시로 돌아오려면 원·달러 환율 흐름이 우선 안정돼야 한다”며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중동 전쟁 영향 등으로 당분간 환율이 진정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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