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명, 5명, 24명, 그리고 28명. 올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에서 기록된 라운드별 언더파 스코어 숫자다. 자고 나면 경기 흐름이 바뀌었던 롤러코스터 승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는 사람은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피 말리는 경쟁이었겠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눈을 뗄 수 없는 ‘꿀잼’ 드라마였다.
“핀크스는 매 홀이 요주의 홀이다. 특히 그린이 까다로워서 핀 공략을 잘 해야만 한다”는 이소영의 말처럼 선수들은 첫날부터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핀크스 공략에 나섰다. 바람이 거의 없고 그린도 부드러웠던 1라운드의 선두 스코어는 8언더파 64타까지 찍혔다. 언더파 작성자만 57명. 이승연은 “그린이 정말 깨끗하다. 이번 시즌 대회 코스 가운데 상태가 가장 좋다. 그린 스피드가 엄청 빨랐는데도 상태가 좋다 보니 본대로 믿고 칠 수 있다”고 했다.
그대로라면 우승 스코어로 20언더파 이상이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 대회 최다 언더파 기록은 지난해 이소미의 18언더파다. 하지만 최다 언더파 얘기는 하루 만에 쏙 들어갔다. 2라운드에 최대 초속 11m의 돌풍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바람은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린 위 볼이 움직일 듯 말듯한 악조건은 6명의 기권자를 비롯해 숱한 희생자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4언더파를 친 임희정 등 아무렇지 않게 치고 나간 강자들도 있었다.
3라운드 때는 바람이 한결 잔잔해졌다. 하지만 이미 단단해진 그린에 첫날의 성대한 버디 잔치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타수를 줄이기에 최상의 조건과 최악의 조건을 하루씩 경험한 선수들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타이틀 싹쓸이를 노리는 이예원이 ‘클래스’를 보여줬다. 2라운드에 퀸튜플 보기로 한꺼번에 5타를 잃었던 5번 홀(파3)에서 보란 듯 버디를 챙겼다. 2라운드에 4타를 잃었던 박현경은 4타를 줄이며 ‘데일리 베스트’ 스코어를 썼다. 하루 사이 타수 차가 8타나 됐다.
4라운드는 4명이 공동 선두이고 선두 그룹과 3타 차까지 10명이 모인 안갯속 승부로 시작됐다. 그린 위 깃대가 거의 흔들리지 않을 만큼 온화한 날씨였지만 까다로운 핀 위치가 선수들을 시험했다. 그린 위 경사가 쉬운 곳에 볼을 갖다 놓는 ‘샷 메이킹’의 싸움이었다. 중반까지 선두와 3타 차의 공동 10위까지 무려 13명이 몰린 대접전이 벌어졌고 중반 이후로는 박현경과 이소영의 2파전이 구름 갤러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포털 사이트 중계의 동시 접속자 수가 4만 명에 육박할 만큼 골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결투였다. 현장 갤러리도 최종일 1700여 명 등 나흘간 4433명으로 제주 개최 대회로는 많은 관중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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