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재테크 유튜브 등을 통해 ‘대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인플루언서가 대출 중개 명목으로 수백억 원 상당의 투자를 받은 뒤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한 시중은행 직원까지 공모자로 지목된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사건을 인지하고 파악에 나섰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 전문가’ ‘대출 상담가’로 인지도를 얻은 강 모(37) 씨가 최근 대부 업체 및 개인 투자가에게 ‘브리지 대출 자금’ 명목으로 수백억 원을 가로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에 따르면 강 씨는 자신에게 상담을 받은 고객의 인감도장 서류 등을 위조해 브리지 대출 수요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꾸민 후 이를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다. 브리지 대출은 통상 사업자 대출을 받기 전에 기존 대출 상환을 위해 고금리로 단기간 빌리는 돈을 가리킨다.
강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앞으로는 제가 직접 사람들의 자금을 모집해 (브리지 대출 자금을) 빌려주려고 한다”며 “그로 인해 투자자에게는 더 많은 수익금을, 대여하는 사람에게는 더 싼 금리로 (대출을) 진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씨는 약속한 기한 내에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상환하지 않았고 자신의 오픈채팅방을 종료한 뒤 잠적했다. 투자자 측은 강 씨가 모집한 금액이 70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이들에게 대출 명목의 돈을 빌려줬다는 한 대부 업체 관계자는 “대출 상담사(강 씨)의 폰지 사기에 약 83억 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며 “상담사가 고객의 도장 및 서류를 위조해 대부 업체에 심사를 넣었고 자사를 비롯한 여러 업체 및 개인이 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부 업체 관계자는 “등기필 정보 등 브리지 대출 관련 서류가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들어왔다”며 “(위조된) 서류에 대부 업체 역시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피해액(투자금)이 70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이 사건의 공모자로 지목된 민 모(36) 씨는 은행원으로 밝혀졌다. 민 씨는 한 시중은행에 다니면서 A·B법인 사내이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중 A법인에 소속된 강릉의 한 유명 빵집은 강 씨가 과거 대출 관련 강의를 진행할 때 참석한 투자자들에게 “자신이 운영 중인 가게”라고 언급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 빵집은 본점 영업을 비롯해 이달 9일까지로 예정했던 백화점 팝업스토어 운영도 중단한 상태다.
금융 사기 연루 의혹에 더해 민 씨가 겸직 금지 규정을 어긴 정황도 드러나면서 해당 은행과 금융 당국도 이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다행히 은행을 통해 불법 대출이 나간 건은 없다”며 “개인의 일탈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기관 임직원은 단순한 회사 직원이 아니라 금융기관이라는 공공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사금융 알선을 못하도록 돼 있다”며 “사금융 알선 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해당 은행에 관련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요청한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불법 대출 중개, 유사 수신 등에 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강 씨의 경우 대출 상담사로 수년간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강 씨가 금융 당국에 등록된 정식 대출모집인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 씨는 2017년께 36억 원대 온라인 게임 아이템 사기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을 통해 대출이 나갈 때는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만 그래도 대출모집인을 통할 때는 불법·사칭이 아닌지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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