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들이 신모델 전기차에 두 가지 종류의 배터리를 동시에 얹어 출시하는 ‘투 트랙 배터리’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들에 가솔린과 디젤,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선택지를 뒀던 것처럼 전기차에도 삼원계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해 선택권을 넓힌다는 전략이다. 긴 주행거리를 원하는 고객은 NCM 배터리 모델을, 낮은 가격을 선호하면 LFP 모델을 선택하도록 유도해 전기차 판매를 확대하려는 셈법으로 풀이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볼보자동차는 이달 출시 예정인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X30을 NCM과 LFP 배터리 모델로 구성했다. 두 모델은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성능과 가격이 확연히 다르다. 69㎾h 용량의 NCM 배터리를 적용한 최상위 트윈 모터 모델은 유럽 기준(WLTP) 최대 460㎞의 주행거리와 428마력의 최고 출력을 제공한다. 동급 전기차 대비 뛰어난 성능이다.
반면 보급형 싱글 모터 모델에는 중국 닝더스다이(CATL)의 LFP 배터리를 얹었다. 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와 출력 면에서 성능이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EX30 보급형 모델도 주행거리가 344㎞로 비교적 짧고 출력도 272마력에 그치지만 최상위 모델보다 가격이 2000만 원 가까이 저렴하다. 볼보는 국내에 NCM 배터리 모델을 우선 들여올 예정이지만 추후 시장 상황에 따라 LFP 모델을 투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 제조사도 유사한 전략을 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9월 독일 IAA 모빌리티에서 공개한 소형 전기차 CLA 콘셉트 모델을 NCM 배터리를 쓰는 고급 트림과 LFP 배터리를 적용한 저가 트림으로 이원화했다.
포드 역시 NCM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는 전기 픽업 F-150 라이트닝에 내년부터 저가형 LFP 배터리 모델을 추가할 계획이다. 고객은 긴 주행거리·고성능과 낮은 가격 중에서 선호하는 가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배터리 선택지를 다변화한 것은 최근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 둔화와 관련 있다. 비싼 가격, 부족한 충전 인프라, 보조금 축소 여파로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꺾이자 무리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대신 저가형 LFP 배터리 모델을 제품군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주요 전기차 구매층이 얼리어답터에서 가격과 성능을 꼼꼼히 따지는 일반적인 소비자로 옮겨가며 수요가 다양해진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 주행거리가 길지 않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모델에 후한 점수를 주는 소비자도 늘었기 때문이다.
국산차 업계도 일부 차종에 LFP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향후 글로벌 제조사처럼 배터리 다변화 전략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기아(000270)는 레이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적용했고 내년 출시할 보급형 EV3와 EV4에도 LFP를 채택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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