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대외 건전성 지표인 경상수지가 5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불황형 흑자’의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반도체발(發) 수출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흑자 폭을 점차 키워가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은 중동 사태로 불확실성이 커진 유가 등 대외 변수가 남아 있지만 4분기에도 수출 호조가 지속되면서 연간 270억 달러 흑자 전망치를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이 8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9월 경상수지는 54억 2000만 달러(약 7조 1100억 원) 흑자로 집계됐다. 전월(49억 8000만 달러)보다 4억 4000만 달러 늘어난 수치다. 이로써 올 4월 7억 9000만 달러 적자에서 5월 19억 300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선 후 5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가게 됐다. 경상수지가 5개월째 흑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3∼7월 이후 14개월 만이다. 다만 1∼9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65억 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57억 5000만 달러)의 65%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는 74억 2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6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흑자 폭은 2021년 9월(95억 4000만 달러) 이후 2년 만에 최대치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줄어든 556억 5000만 달러로 1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다만 8월(-6.3%)과 비교하면 감소 폭이 한 달 새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중국(-17.6%)과 동남아(-7.4%), 일본(-2.5%) 등 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은 여전히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8.5%)과 유럽연합(EU·6.5%) 수출은 회복세를 띠고 있다.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 급감한 482억 3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감소액과 감소율 모두 수출을 크게 웃돌았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 가격 하락으로 원자재 수입이 20.9%나 감소한 영향이 컸다.
서비스수지는 31억 9000만 달러 적자로 한 달 새 2배 넘게 적자 폭이 늘었다. 국내 기업 해외 자회사의 지식재산권 사용료(-6억 7000만 달러)와 기타 사업 서비스(-12억 9000만 달러)에서 적자가 크게 늘었다. 다만 여행수지는 9억 7000만 달러 적자로 8월(-11억 4000만 달러)보다 적자 폭을 줄였다. 중국인 단체관광 허용에도 ‘유커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배당과 이자 등 본원소득수지는 15억 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한은은 4분기에도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이어지면서 연간 270억 달러 흑자 달성을 전망했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반도체 회복과 자동차 수출 호조로 경상수지 흑자가 4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동절기 난방용 에너지 수입 증가 등으로 흑자 폭이 다소 줄어들 수 있지만 연간 전망치인 270억 달러에는 부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0∼12월 월평균 35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면 한은 전망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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