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안전상의 이유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고 근무지 무단이탈 등을 이유로 징계 조치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지회장인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정직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2016년 7월 26일 콘티넨탈 공장이 위치한 충남 세종시의 한 산업단지 내에서 화학물질 ‘티오비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티오비스는 상온에 노출되는 경우 분해되면서 유독성 기체인 황화수소를 발생하는 위험 물질로 분류된다. 사고 지점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콘티넨탈 공장 근로자들은 어지럼증과 두통 등을 호소했고, A씨는 동료 근로자 28명에게 대피를 권유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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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측은 A씨에게 작업장을 무단이탈하고 조합원들에게 임의로 작업을 중지하고 이탈할 것을 지시했다며 정직 2개월 징계를 내렸다. 이에 A씨는 정직처분 무효확인 및 해당 기간 동안 임금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당시 A씨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게 적법했는지 여부였다. 1, 2심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만큼 급박한 위험이 없었다”며 사측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회사가 누출사고를 인지했음에도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린 점도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번 사고로 누출된 물질인 티오비스에서 발생한 황화수소는 독성이 강한 기체이고, 당시 반경 1㎞ 내에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대피방송이 이뤄진 점에 비춰볼 때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며 “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피고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단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한 첫 사례다. 판결 직후 금속노조는 성명을 통해 “그동안 많은 사업장에서 위험으로부터 대피하지 못하거나 작업을 거부하지 못해 매년 2000명의 노동자가 죽어갔다”며 “앞으로 소극적인 대피권을 넘어서서 노동자들이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알 권리, 강요된 위험으로부터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노동현장의 보편적 권리로 확장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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