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봐. 빨리!”
9일 여의도 더현대서울. 5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환한 크리스마스 조명 아래 이국적인 공방들이 모인 골목길이 펼쳐졌다. 유럽의 아담한 광장과 도시의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현대백화점(069960)의 ‘본부’ 격인 이 매장에선 개방 시간인 오전 10시 30분이 지나자마자 인파가 쏟아졌다. 아들을 목마 태운 젊은 부부도 탄성을 내질렀다. 연신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현장에서 이 공간을 꾸민 정민규 현대백화점 책임디자이너는 “넓은 광장을 만들었던 예년과 달리 골목길 통로 폭을 3m 정도로 꾸리겠다고 하자 공간이 예쁘지 않거나 방문객이 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귀뜸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5층 휴식공간인 사운즈포레스트가 이달 1일 ‘H빌리지’로 꾸며져 공개된 이후 평일은 하루에 5000명, 주말에는 1만 명 정도의 고객이 찾고 있다. 안전 관리 인력을 평소보다 두배 이상 늘려야 했을 정도다.
현대백화점은 2021년부터 아기곰 '해리'를 내세워 세계관을 구축하고 전점의 크리스마스 장식 콘셉트를 통일하기 시작했다. 이곳 뿐 아니라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에도 유사한 실내 장식이 꾸며진다. 팬데믹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사회적 이슈를 담되 동화 형식을 빌려 무겁지 않게끔 했다. 올 크리스마스의 주제는 할아버지와 곰인형 해리의 가족애와 꿈이다. 전쟁과 평화를 다뤘던 지난해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트리 △캐롤 △부드러운 인형 △시그니처 향 △케이크 등 오감을 충족시키는 체험 요소도 마련했다.
공간 곳곳에는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상징성이 숨었다. 실제 각 상점의 간판에는 네 자리 숫자와 알파벳이 선명했다. 이 우편번호에는 16개 현대백화점 점포가 오픈한 년도와 이니셜이 조합됐다. 장식마다 매끈한 마감에는 물밑의 노력도 반영됐다. 정 책임은 “공방 콘셉트의 상점 하나하나를 꾸며내기 위해 탱화를 붙이는 조계사 장인에게 연락해 하루에 몇개정도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상점 내부에는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내걸었다. 곰인형과 키링, 에코백을 포함한 9종의 굿즈는 현대백화점이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에 참여해 개발됐다. 이 밖에 그린푸드나 면세점, 리바트 등 그룹사 제품을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도서관 콘셉트로 꾸며진 한 가게 내부에는 PB핸드크림의 PPL(Product Placement)이 상영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매년 유통사들의 경쟁이 뜨겁다. 업계 관계자는 “실외에 장식을 꾸민 신세계나 롯데백화점과는 달리 현대는 중심 점포의 실내에 대형 공간을 할애하는 게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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