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인천의 한 유흥가. 30대 남성 A씨는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연락한 B씨와 처음 만났다. 예쁘장한 얼굴에 성격도 좋았다. 술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가던 B씨는 취했다며 거리를 걷자고 했다. 밖으로 나온 B씨가 술기운에 휘청거렸다. “쉬었다 가자” B씨는 속삭이듯 말했다. B씨를 부축하던 A 씨는 홀린 듯 모텔로 향했다.
A씨의 기대와는 달리 B씨는 모텔에 도착하자 돌변했다. “왜 나를 만지냐”고 갑작스레 따지던 B씨는 성범죄를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A 씨는 경찰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혐의를 벗을 증거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또 다른 여성에게 연락을 받았다. 합의금 수백만 원을 주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이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이주희(36기) 당시 인천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는 A씨가 범행을 부인함에 따라 메시지 내역 등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일방적인 성범죄를 당했다는 B씨의 진술과 다른 정황들이 많았다. 더욱 이상한 점은 B씨가 이전에도 유사한 범행의 피해자로 신고된 바 있었고, 또다른 여성 C씨와는 각자의 성범죄 사건에 참고인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객관적 자료를 검토할수록, 의심은 확신이 됐다.
이 검사는 A씨와 C씨가 관련된 다른 성폭행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돌입했다. 대부분 피고인과 남성 단둘만 있던 상황에 발생한 사건인 만큼 무엇보다 객관적 자료 확보가 중요했다. 주거지 압수수색, 휴대전화 포렌식, 통화내역 및 계좌거래 역도 확인했다. A씨와 C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번갈아가며 한 명은 남성을 유혹하고, 다른 한명은 허위신고하는 방식으로 합의금을 요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만 29명으로, 이들이 합의금으로 받은 금액만 4억여 원에 달했다. 이들 일당은 현재 공갈‧무고 혐의로 9월 15일 구속 기소돼 현재 인천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이들 일당에 의해 억울하게 성범죄 피의자로 입건된 피해자들은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 검사는 “피고인들은 통상 당사자들만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자들의 진술에 크게 의존하고,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다는 사정을 악용해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수억 원의 수익을 얻었다”며 “사안의 실체를 밝혀내 제3의 피해를 차단한 점에 의의가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검사는 피고인의 사례로 인해 실제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도 억울함을 겪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을 우려했다. 성범죄 범죄자가 무고죄를 언급하며 적반하장식으로 피해자를 겁박하는 경우다. 이 검사는 “무고죄는 사법질서를 저해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엄단해야 한다”면서도 “실제 성범죄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도록, 성범죄와 관련된 무고죄의 수사는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는 해당 기사로 인해 피해자가 2차 가해 등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익명 처리하는 한편 사건 내용도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각색해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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