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발발 이후 아랍 6개국은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에 반발해 석유 무기화 조치를 단행했다.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그다음 해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 경제는 두 자릿수 물가 급등과 마이너스 성장률 기록 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1978년 이란 혁명으로 제2차 석유 파동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 한국의 물가 상승률은 28.7%에 달했고 성장률은 마이너스 2.1%를 기록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1%까지 인상하자 달러 가격이 급등하면서 신흥국들의 외채 상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이 국지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를 이루면서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란 참전으로 전면전이 발생하고 가장 중요한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막힐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과거 오일쇼크 때와 같은 ‘워플레이션(war·전쟁+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중동 분쟁이 확산되면 공급망 병목현상 때문에 원유뿐 아니라 다른 상품들의 공급 가격도 오르게 된다. 또 국제 곡물 가격이 3개월째 하향 안정됐지만 러시아의 보복으로 우크라이나의 흑해 수출로가 다시 막히면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 올해 발생한 엘니뇨가 슈퍼 엘니뇨로 확대되면서 농수산업이 피해를 보고 ‘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시장이 1970년대 이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중동 분쟁이 확산하면 이중 충격으로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재연되면 미국의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전 세계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신흥 시장에서는 자금 유출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0%에 이르고 식량 자급률은 45%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충격이 클 것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재발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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