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16일 “국가기간전력망의 인허가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에 올리고 도로를 뚫을 때 전력망도 함께 깔아 주민 수용성을 제고하는 내용의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을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경부고속도로 등 국가기간 인프라와 다름없는 주요 전력망 구축 사업을 빚더미 위의 한국전력에 떠넘길 게 아니라 정부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 차관은 이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8회 에너지전략포럼’ 기조강연을 통해 “한전이 추진 중인 동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 선로가 당초 계획보다 10년 이상 늦어져 발전소를 다 지어 놓았는데 (전력을) 실어 나를 방법이 없다”며 “(이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기간전력망 적기 건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차관은 “삼척·울진에서 수도권으로 오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경과지가 필요하냐”며 “시군구읍면을 따지면 수십 개, 백두대간까지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전력망인 송전선로를 짓는 게 더 어려워졌다”며 “환경과 자기 자산에 대한 지역 주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점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강 차관은 이어 “송전망 건설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 요인 중 첫 번째가 수용성 문제”라며 “이걸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높이가 100m를 넘는 송전탑을 마을 앞에 짓는 것을 쉽게 허용할 주민들은 없을 것”이라며 “수용성 확보는 결국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전설비주변법에 따른 지원 단가와 보상 범위는 2014년 이후 제자리걸음이라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핵심 전력망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범정부적 노력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글로벌 트렌드다. 강 차관은 “많은 나라들이 과거에 송전계통을 단순히 전봇대·철탑 정도로 인식해 투자가 저조했다”면서 “재생에너지가 나오면서 (지역 편중과 백업설비 필요에 따른) 정부 차원의 전력망 보강 작업에 앞다퉈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로 훗카이도~도호쿠~도쿄를 연결하는 해저 HVDC 선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는 6주 이내 송전망 건설을 위한 토지보상에 합의한 경우 20% 수준의 간소화 보상금을 얹어주는 제도를 두고 있다.
강 차관은 “제일 좋은 정책은 송전선로를 안 짓고 (수요처는 발전소 인근에, 발전소는 수요지 인근에 배치하는) 분산에너지”라면서도 “꼭 필요한 송전선로는 건설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부연했다. 제주와 호남 지역에 무분별하게 태양광발전시설이 들어서면서 경부하기(전력수요가 적은 시기)에 생산된 전기가 남아돌아 블랙아웃(대정전)을 걱정하는 반면 막대한 고품질 전력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력망 보강이 가장 시급한 곳으로 2030년 말부터 가동할 용인 시스템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꼽았다. 업계에서는 용인 시스템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 약 10기가와트(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강 차관은 “일단 용인 시스템반도체 국가첨단산업단지 안에 LNG 발전소를 지어 팹(생산공장) 몇 개를 커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동해안~영주~용인을 연결하는 한편 해남과 평택을 이은 뒤 평택부터 용인까지 전력을 끌어오겠다는 게 정부의 3단계 대응 전략이다. 강 차관은 “결국 바다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민들을 설득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송전망 건설을 짧은 기간에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민간의 역량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 차관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탄소 중립 실현과 에너지 안보 확보”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장단점을 잘 활용해 조화롭게 섞는 적절한 에너지믹스가 중요하다. 특정 에너지원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도,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다만 “허가를 받은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는 책임이 뒤따른다. 태양광발전설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전력계통에 무리를 주지 않는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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