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7일 현대엘리베이(017800)터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했다. 남편인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이사회 지휘봉을 잡은 지 20여 년 만이다.
현 회장은 이날 열린 현대엘리베이터 임시 이사회에 참석해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현대엘리베이터도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는 핵심 가치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현 회장은 2003년 10월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2004년 3월부터 엘리베이터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경영을 강화하고자 하는 현 회장의 선제적 결단에 따른 것"이라며 "차기 의장은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다음 달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새 이사진과 신임 이사회 의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아울러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배구조 고도화를 위해 사외이사 선정 프로세스도 개선한다. 성과와 연동된 사외이사 평가 및 보상체계를 수립하고 감사위원회와 별도의 지원조직을 설치할 예정이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도 마련했다. 향후 당기순이익 50% 이상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고, 최저배당제를 시행해 수익률에 대한 장기 예측 가능성을 높일 계획이다. 또 비경상 수익에 대해서도 별도의 배당, 자사주소각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할 방침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유일한 토종 승강기 업체로 2대 주주인 스위스 승강기업체 쉰들러와 수십 년째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쉰들러는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끊임없이 소송을 벌이며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를 확보한 KGCI자산운용이 현 회장과 이사회 분리를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내며 행동주의를 예고하기도 했다.
현 회장은 이같은 적대적 지분의 공격 속에서 현대엘리베이터의 발전을 위해 위해 용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은 승강기 사업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남다르다"며 "대를 이어 국내 승강기 생태계를 지키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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