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출국 예정이라 거래를 위한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떼러 왔습니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50대 A 씨는 행정전산망 장애로 증명서 발급을 못하게 되자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 중랑구 면목본동 주민센터도 마찬가지. 고등학생 박 모(17) 양은 “콘서트에 가려고 청소년증을 발급받으러 왔는데 당황했다”면서 “신분증이 꼭 필요하다고 항의했더니 수기로 작성한 확인서를 발급해줬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행정전산망 ‘시도새올’에 장애가 발생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각종 증명서 발급이 멈추면서 시민 불편이 속출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아예 주민들이 들어오면 오류를 안내하면서 대기 명단에 전화번호를 남기도록 하거나 바로 돌려보내기에 바빴다. 증명서 발급을 위해 방문한 고령의 시민들은 무겁게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면목본동 주민센터의 경우 평소 평일 오전 시간대에 방문객이 대여섯 명씩 대기하고 있었으나 이날은 민원인 한 명 없이 내부는 썰렁했다. 직원들은 창구에 ‘증명서 발급 불가’ 문구를 붙이고 연신 방문하는 시민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특히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어서 부동산이나 자동차 매매 계약을 해야 하는 등 각종 민원 서류 발급에 마음이 급한 사람들이 많았다. 합정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복구가 되면 토요일이라도 주민센터를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도 언제 복구될지 몰라 죄송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의 경우 오프라인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주민등록등·초본, 인감증명서, 본인서명사실확인서, 전입세대열람 등 각종 증명서 발급에 차질이 발생하며 혼잡이 빚어졌다. 그나마 부동산 등기부등본이나 교육제증명 서비스만 가능했다. 최초 행정안전부는 온라인으로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인 ‘정부24’를 이용하라고 안내했으나 오후 2시부터는 정부24마저도 먹통이 됐다. 이용자가 몰리면서 접속 지연 상황이 벌어지다가 결국 서비스 자체가 아예 중단됐다. 정부24는 주민등록등·초본 발급, 건축물 및 토지(임야) 대장 발급·열람, 지방세 납세증명서 발급 등 국민 일상 생활에 밀접한 1만 2500여 서비스를 처리하는 디지털정부 인프라의 대표 격으로 꼽힌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기 위해 영등포구의 한 주민센터를 방문한 시민 정 모(72) 씨는 “급하게 증명서가 필요해 추운 날씨에 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 발급이 안 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며 “평소 중요도가 낮은 상황에서 긴급 문자를 남발하더니 정작 이럴 때는 안내 문자 한 통을 보내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세 계약 후 서류 작성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은 박 모(25) 씨 또한 “오늘까지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면 대항력 확보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인데 직원들도 모르쇠로 일관하니 불안한 마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등포구 주민센터 관계자는 “출근했을 때부터 시스템이 먹통이었다”며 “민원인들의 불만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돌려보내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정부서비스 장애로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납부 및 신고기한을 복구 시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또 확정일자 등과 같이 접수와 즉시 처리를 요하는 민원은 민원실에서 먼저 수기로 접수를 받고 이후 오늘 자로 소급해 처리할 방침이다. 행안부는 “전산망 장애로 발생한 불편사항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관계기관과 협조해 불편,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자체의 재정 계획, 예산 편성, 지출, 결산 등 재정 업무를 지원하는 시스템인 e호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지자체와 공공기관 업무에도 지장이 많았다. 경기도에 있는 공공기관 근무자 김 모 씨는 “통합형 그룹웨어(전자문서 시스템)뿐만 아니라 경기도 공공기관 통합 ERP(예산·회계·인사·복무·급여) 연동 장애도 발생해 급여 계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전에도 그룹웨어로 문서 하나 켜는 데 10분 이상 걸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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