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끌어다 쓴 한국전력공사의 대출 잔액이 9개월 만에 6000억 원 더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속된 적자 탓에 사채 발행 한도가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라 빚을 내 빚을 돌려막는 차입 경영에도 어려움이 커진 데 따른 일종의 풍선 효과로 보인다.
19일 한전이 공시한 올 3분기 보고서를 보면 연결재무제표상 9월 말 기준 한전의 부채 총계는 204조 1000억 원이었다. 지난해 12월 말 192조 8000억 원보다 5.9%(11조 3000억 원), 직전 분기 말인 6월 말 201조 4000억 원보다 2조 7000억 원(1.3%) 증가했다. 금융기관 대출과 한전채 등을 망라한 차입금 규모도 2022년 12월 말 120조 6000억 원에서 2023년 9월 말 134조 원으로 더 가파르게 늘어났다. 한전이 3분기 2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10개 분기 만의 흑자 전환에도 한전의 ‘빚투(빚을 내 투자)’가 이어진 것은 벌어들인 돈만으로는 송전망 등 필수 전력 설비를 새로 짓거나 정비하는 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한전이 은행에서 빌리는 단기 대출을 늘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별도재무재표상 한전의 은행 대출 잔액은 2022년 12월 말 3조 원에서 2023년 9월 말 3조 6000억 원으로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차감·가감 요인을 반영한 원화 사채 잔액은 55조 8000만 원에서 57조 4000만 원으로 2.9% 늘어난 바 있다. 절대액은 크다고 볼 수 없지만 증가율에 있어서는 은행 대출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의미다.
사실 2021년 이전까지 한전은 금리 등의 조건이 유리한 사채 발행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에 더해 한전이 찍어낸 초우량물(AAA등급) 회사채가 채권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높은 이자 비용에도 시중은행에서 손을 벌려야 했다.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한전채 발행 시기 분산과 함께 일부를 은행 대출로 전환하라고 공개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은 지난해 5~11월 준거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 3개월물에 최고 1.70%의 가산금리를 붙여 3조 원에 달하는 대출을 내줬다. 한전은 올 들어서 만기가 도래한 은행 대출을 더 나은 조건으로 갈아타는 한편 대출 규모도 키우고 있다. 내년에 자본금과 적립금의 5배인 한전채 발행 한도를 초과할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를 의식한 조치다.
특히 적용금리가 최고 6%에 육박하던 9000억 원 규모의 우리은행 대출은 6월과 7월 조기 상환하고 총 1조 원의 국민은행 신규 대출을 일으켰다. 당장 20일 만기가 도래하는 6000억 원의 하나은행 대출도 또 다른 대환대출로 틀어막을 방침이다. 한전 관계자는 “별도 기준 올 1~9월 한전의 이자 비용은 어림잡아 2조 1000억 원으로 월평균 2333억 원, 일평균 78억 원에 달한다”면서 “한 푼이라도 이자를 아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으나 전기 요금의 대폭 인상만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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