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 업계의 숙원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사용후핵연료의 처리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당장 7년 뒤부터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해둘 곳이 없어 멀쩡한 원전의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여야는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고준위특별법 합의안 도출에 실패한 뒤 당 원내지도부에 추후 협상을 일임하기로 했다. 고준위특별법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날까지 법안소위에서 11차례에 걸쳐 심사됐지만 번번이 야당 반대에 가로 막혔다.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갈 곳 없는 사용후핵연료는 쌓여가고 있다. 1978년 고리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45년간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쌓여 있는 사용후핵연료는 1만 8600톤에 달한다.
문제는 7년 뒤인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예상 포화 시점은 2030년 한빛원전, 2032년 고리원전(조밀저장대 적용 시), 2037년 월성원전 순이다. 추가 임시저장시설이라도 마련하지 않는다면 가동 중단 등 원전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관련 법안이 조속히 처리되지 못할 경우 원전 수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세계 원전 운영 상위 10개국 가운데 영구 방폐장 건설에 착수하지 못한 나라는 인도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비롯해 원자력·방폐물 분야 원로들로 구성된 ‘방폐물 원로 포럼’은 “고준위특별법은 이미 20대 국회에서도 한 차례 폐기된 전례가 있다”며 “원전 운영으로 발생한 고준위방폐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책무를 후손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현 세대가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도 “고준위특별법 제정은 미래 세대의 지속적인 원전 활용을 위한 일”이라며 “친(親)원전, 탈(脫)원전으로 여야가 대치할 게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역사회는 물론 정부·지방자치단체 등의 고준위특별법 제정 요구가 거센 만큼 29일 법안소위에 다시 상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법안소위 문턱을 넘더라도 산자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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