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투자를 위한 마중물이 절실한데 안타깝습니다.”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지연되며 바이오 기업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에 대한 토지 및 건물 투자세액공제가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바이오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K바이오 기업들은 그동안 투자세액공제 범위를 토지 및 건축물까지 확대해달라고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 올 7월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열린 ‘바이오경제2.0 원탁회의’에서도 “바이오 산업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더라도 건축물 등에 대한 세액공제가 적용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공통된 건의가 잇따랐다. 첨단산업인 바이오 산업은 설비뿐 아니라 건축물 자체에 드는 투자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가뜩이나 힘든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모래주머니를 몇 개씩 달고 뛰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총선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업 투자 환경 개선은 나 몰라라 하고 오히려 때리기를 노골화하고 있다. 반기업 정서를 자극해 표를 얻어내려는 선거 전략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여당은 주로 금융권을 겨냥하고 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4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른 시일 내 기대에 부합하는 자동차보험료 인하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대형사들이 앞장서서 보험료 인하 여력을 살펴주셨으면 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여야가 기업 때리기에 속도를 내면서 기업 애로 해소와 규제 완화 관련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시행 유예 여부는 중소기업들에는 발등의 불인데도 국회 통과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유예에 반대해온 민주당은 최근 홍익표 원내대표를 통해 전향적 입장을 내놓았지만 여권이 수용하기 힘든 ‘정부의 사과’를 전제로 내걸어 사실상 시행 유예 불발을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6단체는 지난달 공동성명을 내고 정치권에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규제 혁신 관련 법안의 신속 처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역시 법안 심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춰주기 위한 세법 개정안도 법안소위원회 문턱을 쉽사리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고려해 상증세법 및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기업승계 증여세 저율 과세(10%) 구간을 상향(증여재산 가액 60억 원→300억 원)하고 연부연납 기간 또한 20년까지 늘리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이달 17일과 20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여야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미 20% 저율 과세를 해주고 있는데 추가로 10%포인트를 더 깎아주자는 것은 과도한 혜택”이라고 반대했다.
상속인이 기업을 물려받은 뒤 5년 동안 표준산업 분류상 중분류 내에서 업종을 변경해야 기업상속공제 특례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대분류로 넓히는 개정안에 대해서는 여당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표준산업 분류 대분류의 ‘제조업’은 모든 제조 분야가 포함된다. 품목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오랜 숙원인 ‘기업승계 관련 세제’ 관련 법안 개정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이어가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자체 설문 조사 결과 30년 이상 기업의 대표자 연령 구성은 60세 이상이 80.9%, 70세 이상은 30.5%로 나타났다”면서 “기업 승계를 하지 않을 경우 절반 이상이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한다고 대답했다. 기업 승계 지원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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