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정부는 2010년대 들어 다양한 영유아 보편 지원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2013년 0~5세의 보육료와 유아 학비를 전면 지원하는 한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등원하지 않는 모든 영유아에게까지 ‘가정양육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2019년부터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아동이 있는 모든 가정에 월 10만 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올해부터는 0세 아이를 둔 가정에 월 70만 원, 1세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월 35만 원을 지급하는 부모급여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0~1세 아이를 양육하는 가구에 월 30만 원(어린이집 이용 시 월 50만 원)씩 제공하던 영아수당을 사실상 확대 개편한 정책이다. 올 9월 국무회의에서는 내년부터 부모급여를 각각 월 100만 원(0세)과 50만 원(1세)으로 확대하는 아동수당법 시행령도 의결됐다.
정부가 해를 거르지 않고 잇따라 영유아 가정을 대상으로 한 현금 지원책을 내놓는 것은 저출산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2013년 1.19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해마다 하락을 거듭한 끝에 올해 상반기 0.76명까지 곤두박질친 상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보편적 현금 지원 정책이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의뢰로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연구진이 작성한 ‘저출산 정책평가 및 핵심과제 선정연구’ 보고서 역시 현금 지원 정책의 명확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연구진은 2002~2021년 건강보험 데이터를 토대로 전체 건보 직장가입자의 소득 수준을 5분위로 나눴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의 출산지원금이 소득 분위별 합계출산율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했다. 분석 결과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4분위(소득 상위 21~40%)의 P값은 0.0001 미만으로 조사됐다. 통계적 유의성을 따질 때 쓰이는 P값은 보통 0.05를 밑돌 경우 유의미한 변수로 판단된다. 반면 소득 1분위(상위 20%)는 물론 3~5분위(상위 41~100%)의 P값은 0.60~0.95 사이에 분포하는 등 통계적 유의성이 매우 낮았다. 일부 중산층을 제외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서는 출산지원금과 출산율의 유의미한 상관 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는 의미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난 중산층에 현금 지원 정책을 집중하거나 저소득층 위주로 지원을 차등화하는 방안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책적 당위성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에 현금 지원을 보다 집중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일시적인 현금 지원액이 1000만 원을 넘을 경우 출산율 제고 효과가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도 함께 내놓았다. 보고서는 현금성 지원이 출산율을 가시적으로 높이려면 대략 1000만 원을 일시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도 다만 1000만 원을 넘어설 경우 부부 출산율 기여도가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보편 복지 지원액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태어난 아이가 0~5세에 걸쳐 중앙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편수당은 최소 2700만 원에서 최대 4297만 2000원에 달한다. 여기에 충청북도가 올해부터 신생아에게 5년에 걸쳐 총 1000만 원을 지급하는 출산육아수당제도를 시행하는 등 각 지자체의 현금 지원까지 합치면 액수는 더 늘어난다.
저고위는 현금 지원 구조의 개편과 함께 일과 육아를 병립할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역량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서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효과가 큰 육아휴직제도를 확산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연구진이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급여가 월 10만 원 오르면 출산 36개월 후 노동시장 복귀율은 0.3%포인트, 출산 후 36개월 이내 재출산율은 0.4%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저고위는 올해 말 발표할 예정인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방안에 남성 육아휴직 확대와 기업별 육아휴직 이용 격차 축소 방안 등을 담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육아휴직 재원이 고용보험기금에 묶여 있어 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재원 확보와 함께 육아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석철 저고위 상임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현재 약 150만 원인 육아휴직 급여를 최저임금 수준까지 높이려면 7000억~1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우선 재원 마련 등을 통해 육아휴직 급여를 현실화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육아휴직 정책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등 보육 인프라 확충 역시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 관리 체계 통합)’ 논의와 연계돼 있는 만큼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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