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별 것 아닌 일이었을까. 한 달 전 대통령실과 여당이 한목소리로 금융위원회를 윽박질러 전격 시행한 11·6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단언컨대 내년 4·10 총선 카드다. 수십 년간 한국 금융정책을 떡 주무르듯 해온 소위 ‘모피아’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그래도 관치보다는 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였다. 김 위원장은 2021년 5월 문재인 정부에서 부분 재개된 공매도를 때가 되면 전면 허용하려 했지만 자신의 손으로 정반대 결정을 내렸다. “그깟 공매도 금지가 총선 승리에 비할 일이냐”는 여당 의원들의 일갈에 그의 소신은 설 자리가 없었던 듯 보인다. 오죽하면 김 위원장이 국회에 출석해 최우선으로 다짐한 게 ‘참자’였을까.
공매도 금지에 여권이 적극 나선 것은 한 표가 아쉬운 마당에 1400만 명을 넘어선 주식 개인투자자 상당수가 공매도에 반감을 갖고 있어서다. 없는 것을 판다는 ‘공매도(空賣渡)’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는 것부터 어렵고, 먼저 주식을 빌려야 하는 공매도 거래의 복잡한 특성상 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실제로 국내 공매도 거래 주체 중 외국인이 67%에 달하고 기관은 31%, 개인은 2%에 불과하다. 오르는 주식을 찾기도 힘든데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가 일반인에게는 얄미울 법도 해서 공매도 허용은 인기 없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공매도를 금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11·6 조치 이전에도 공매도를 일부 종목들만 부분 허용한 국가조차 OECD에서 유일했을 만큼 공매도는 국제적 트렌드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매김해 있다. 자유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의 자본시장에서 투자 위험을 줄이고 무엇보다 증권의 적정 가격을 찾게 해주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높이 평가하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매도가 없는 시장은 주가 조작 세력이 활개치기가 더 용이하다. 더욱이 개인들도 이미 공매도와 비슷하게 특정 자산의 가격 하락이 수익률을 높여주는 수많은 ‘인버스’ 투자 상품에 돈을 넣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포퓰리즘적 공매도 금지 정책은 그렇다면 내년 총선에서 표를 모을 수 있을까. 공매도 금지를 주도한 여당이 득을 보려면 역시 경제가 좋아져야 한다. 코스피지수가 치솟는다면 지지율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가 증시에 불쏘시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공매도 금지가 시행된 첫 날인 11월 6일 코스피지수는 2502.37이었는데 한 달 후인 12월 6일은 2495.38에 머물러 있다.
특히 정부가 선거에 급급해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 환경에서 공매도 금지로 자해나 다름없는 시그널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보냈으니 공들여온 대외 신인도 향상은 물건너간 셈이다. 11·6 조치로 상징되는 공매도 전면 금지는 역대 네 번째다. 이전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시행됐다. 경제 관료들도 외국인투자가들이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이 이전 세 차례 대위기 때만큼이나 나쁘다고 정부가 자인한 것이냐고 물으면 답해줄 말이 없다고 한다. 공매도 금지가 정치에 휘둘린 결정이 아니라고 설명하려면 한국 경제가 나홀로 대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들은 공매도 금지가 시행된 날 즉각 한국 자본시장의 숙원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은 당분간 어려워졌다는 날 선 비판을 쏟아냈고 내년에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도 물거품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스피 시가총액은 최근 1996조 원 수준인데 외국인 비중이 32.3%에 이른다.
글로벌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환율도 높아 외국인 투자가 늘기 어려운 환경인데 공매도 금지로 한국의 정책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으니 외국인 자금의 탈출이 현실화하면 진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표에 매달린 단선적 정책 전환이나 결정은 정부 여당에 부메랑이 돼 국정 운영은 물론 선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위정자들이 숙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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