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세계 최대 규모의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했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을 포함한 1400개 브랜드가 입점한 플랫폼을 품으면서 쿠팡은 단번에 글로벌 시장의 명품 유통 강자로 부상하게 됐다. 이는 중고 등 개인 간 거래(C2C) 플랫폼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는 네이버와는 대비되는 해외 공략법이다. 전략은 다르지만 양 사는 모두 아마존의 ‘약한 카테고리’를 공략함으로써 북미와 유럽시장을 완전히 내주지 않겠다는 구상이다.
19일(한국 시간) 쿠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파페치를 인수하려는 목적으로 합자회사 ‘아테나’를 설립하고 그 지분 80.1%를 소유한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는 약 6500억 원(5억 달러) 수준에 달한다. 쿠팡이 글로벌 기업을 인수한 건 창립 이후 처음이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파페치는 명품 분야의 랜드마크 기업”이라며 “앞으로 파페치는 비상장사로 안정적이고 신중한 성장을 추구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브랜드에 대한 고품격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격적인 의사결정의 배경에는 파페치의 가치가 크게 하락한 현 상황이 투자의 적기라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7년 영국에서 설립된 파페치는 미국·일본·중국·인도 등 세계 190개국에 진출하며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지난해 약 3조 원(23억 1668만 달러)의 매출을 거뒀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도 위기에 몰렸다는 관측이 나왔다. 거액을 들여 대형 패션 업체를 인수·합병했지만 과도했다고 평가받았다. 최근 실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대표적 소비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둔화된 데다 명품 업체들이 온라인에서조차 자사 상품을 직접 유통하려는 경향은 거시적 악재였다.
다만 쿠팡에게는 국내 시장의 성장 한계를 돌파할 기회가 될 전망이다. 회사 측은 “로켓배송을 통해 물류 역량을 쌓은 쿠팡이 파페치의 명품 콘텐츠와 결합하면 수익성 개선과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실제 이번 인수로 그간 신선식품이나 공산품에 비해 약점으로 꼽혔던 쿠팡의 패션과 명품 라인업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페치에는 3대 명품인 ‘에루샤’를 비롯해 글로벌 브랜드 1400개가 입점해 있다. 현재 국내에서 최대 5일가량 소요되는 배송 속도 역시 쿠팡의 물류망과 결합되면 크게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파페치는 이미 뉴욕·파리·밀라노에서 당일배송을 서비스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이 보유한 브랜드를 상향 확장하고 새 매출 확대 동력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기존의 빠른배송 서비스를 명품거래에까지 확장하는 방안도 상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부도설이 있던 회사인 만큼 향후 회생이 과제”라고 조언했다.
쿠팡은 ‘아마존이 약한’ 카테고리를 전략적으로 노린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위조품 관리에서 난항을 경험한 탓이다. 명품사 역시 브랜드 평판 관리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아마존 진출을 기피해왔다. 반면 파페치는 높은 신뢰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유럽 부티크와 직접 연계해 온라인 판매의 약점인 위조품 리스크를 없앴다.
아마존의 약점을 파고드는 건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개인 간 거래(C2C)의 커머스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중이다. 북미와 일본, 유럽에 각각 거점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올 초에는 2조 3000억원을 들여 북미 최대 중고패션 플랫폼인 포쉬마크를 인수했다. 유럽에서는 지난해까지 프랑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와 스페인 왈라팝에 투자한 바 있다. 국내는 크림이, 일본에선 빈티지시티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다양한 국가에서의 개인 간 거래 시장을 잇기 위한 체계를 구축중”이라며 “AI·라이브·클라우드 등의 팀네이버 기술력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 개인간거래(C2C)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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