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역대 최대 규모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기업들이 앞다퉈 공모채 발행 준비에 나서고 있다. 미국발 금리 인하 신호에 채권금리까지 급락하자 공모채 시장이 차환 발행 수요로 연초부터 북적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용등급 ‘AA-’급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내년 1월 3일 2000억 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새해 첫 예측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회사채 발행은 올 4월(3000억 원)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4000억 원까지 증액 발행하는 안을 검토 중이며 조달 자금은 전액 채무 상환을 위해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포함해 내년 1월 수요예측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은 현재까지 8곳으로 파악됐다. LG유플러스(032640)(모집액 2500억 원), 한화솔루션(009830)(2000억 원), KCC(002380)(3000억 원), 미래에셋증권(006800)(3000억 원), 롯데쇼핑(023530)(2500억 원), 한화에너지(800억 원), 롯데케미칼(011170)(2000억 원) 등이다.
한화에너지(A+)를 제외하면 모두 신용등급이 ‘AA-’~‘AA’급의 우량채로, 증액 발행을 가정한 이들의 최종 발행 규모는 3조 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A급 비우량 신용등급 기업들도 다수 발행을 준비하고 있어 1월 공모채 수요예측 진행 기업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내년 회사채 만기 물량은 올해(70조 원) 대비 11조 원 늘어난 약 81조 원이다. 금투협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1년 이래 최대치다. 내년 1월과 2월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는 각각 7조 3475억 원, 8조 8305억 원으로 두 달 동안에만 16조 1780억 원어치다. 지난해 1월과 2월 만기 물량이 각각 4조 9159억 원, 5조 9271억 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5조 3350억 원 늘었다. 통상 연중 회사채 발행액이 가장 많은 4월에도 12조 3654억 원어치 만기 물량이 예정돼 있다.
회사채 만기 물량이 대거 쏟아지는 건 지난해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채권시장 투자심리가 악화하자 당시 기업들이 회사채 만기를 2년 이내로 짧게 발행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만기 2년 이하 단기물 비중은 13.3%로 전년(6.3%) 대비 2배 넘게 증가했다.
1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기점으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채권금리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도 발행을 서두르는 주된 이유다. ‘AA-’급 3년물 금리는 지난달 1일 4.9%에서 22일 3.964%까지 떨어져 올 최저치를 경신했다. 채권금리 하락에 따라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수요도 감지된다.
특히 연초에는 기관들이 자금 집행을 재개하기 때문에 수요예측 흥행에 따라 채권금리가 추가적으로 하락하는 ‘연초 효과’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이 채권시장안정펀드와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내년 12월 말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도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연초 효과는 기대보다 약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현재 회사채와 국고채 간의 금리 차이가 ‘레고랜드 사태’ 진정 후 급격히 축소됐던 올해 상반기 저점 수준까지 도달해 단기적으로 추가 강세 여력은 제한적”이라며 “연초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건설·석유화학 등 업황이 부진한 분야의 비우량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역시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평가는 22일 GS건설(006360)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21일에는 한국신용평가가 ‘A-’급의 태영건설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하향 검토’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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