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영국, 미국 등 주요국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고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정부는 2025년 시행 예정이었던 ESG 공시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한 뒤 세부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25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EU는 직원 수 500명 이상 대형 상장사의 ESG 공시를 2025년부터 의무화한다. 내년 ESG 정보를 2025년부터 공시하는 식이다. EU 내 한국 기업 자회사를 포함한 비상장사는 2026년부터 공시 의무를 진다.
다른 국가들도 ESG 공시 일정을 구체화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25년으로 확정했고 미국과 홍콩은 2025년을 목표로 관련 기준을 가다듬고 있다. 영국은 2026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가 목표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별도로 개별 주 차원에서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회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은 ESG 공시 의무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ESG 공시 도입 속도에 따라 기업의 생사가 걸린 투자 결정이 이뤄지게 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이 같은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0월 금융 당국은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 ESG 공시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가 기업 부담을 이유로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ESG 공시 의무화 연기가 국내 기업 경쟁력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EU와 미국 등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해당 국가의 ESG 공시 의무화 일정에 맞춰 ESG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ESG 공시 의무화를 무작정 늦추기보다 ESG 공시 기준과 범위를 명확히 해 국내 기업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초대위원인 백태영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ESG 공시에 드는 비용을 손실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ESG 공시가 미흡하면 투자 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투자 판단의 주요 척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