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재정 확대와 저금리에 기반한 부채 증대에 의존해 임기응변식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시대가 지났다”고 밝혔다. 가계부채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수준에 이른 만큼 이를 포함한 여러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올해는 주요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한은도 내부 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정책을 결정할 여지가 커졌다”고 올해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 총재는 2024년 신년사를 통해 “대부분 중앙은행이 고물가에 대응해 한 방향으로 달려온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나라별로 정책이 차별화될 것”이라며 “우리가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올해 경제 상황은 물론 지난해 정책 운용 성과에 대한 최종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국내외 경제 여건의 변화를 고려할 때 올해는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 회복과 금융 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교한 정책조합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리 추가 인상보다는 물가 흐름을 지켜보다가 적절한 시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에 수렴하는 시기를 올해 말에서 내년 초로 예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등산에서 정상 직전의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에서 마지막 구간, 라스트마일(last mile)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며 “물가 상승세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원자재 가격 추이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 등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고 했다.
긴축 기조 지속에 따른 금융 불안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도 요구했다. 이 총재는 “국내에서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일부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어 경제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정부,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정리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특히 이 총재는 “그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느라 충분히 살피지 못했던 여러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는 데 한은이 더 힘써야 할 것”이라며 “과거 부동산 가격 급등 및 PF 부실화의 구조적 원인과 제도적 보완책은 무엇인지, 향후 디지털 시대 뱅크런에 대응한 현재 규제 및 감독 체계는 충분한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인 시계에서 저출산 고령화·저출산, 수도권 집중, 지방소멸 극복 방안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등 다른 환경에서 체질 개선 방향 등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