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 장군은 조선 초기까지 이순신 장군처럼 추앙받았던 인물이에요. 시간이 흐르면서 몇 백 년의 공백기가 생겼지만, (드라마를 통해) 알려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배우 지승현)
조선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양규(?~1011)가 있다. “양규와 김숙흥은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맞고 함께 전사했다. (고려사 권94, ‘양규열전’ 중)” 사료로 남은 비장한 최후처럼, 제2차 여요전쟁 당시 수많은 혈투를 뚫고 불가능한 승리를 고려에 안겨주었던 명장 양규는 최근 방영 중인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양규와 한 몸이 되어 그의 의기를 전하는 인물이 바로 데뷔 18년차 배우 지승현(42)이다.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승현은 “작품을 제안받고 양규 장군을 알리고 싶었다”면서 “숙제를 잘 한 것 같아 기쁘다”는 출연 소감을 전했다.
KBS 대하사극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총 제작비 270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제작비가 소요된 대작이다. 11세기 초 26년 간 이어진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소재로, 시대의 격랑을 웅장하게 그려냈다. 방영 이래 꾸준히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동시에 넷플릭스 시리즈 국내 1위를 차지하는 등 폭넓은 시청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양규는 강감찬(최수종 분)과 함께 여요전쟁 당시 활약한 명장으로, 고려군 3000명으로 거란군 40만 명에 맞선 흥화진 전투 등 전쟁의 기적 같은 순간을 연출했다. 그러나 그는 1011년 거란군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싸우던 중 숨을 거둔다. 지난 7일 방영된 ‘고려거란전쟁’ 16화에서는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맞은 양규의 최후가 담겼고, 이후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잇달았다.
지승현은 MBC 사극 드라마 ‘연인’에 이어 ‘고려거란전쟁’의 양규로 분하면서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하게 됐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남자 우수상을 수상했다.
숨겨진 양규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건 지승현이 전한 진정성 덕분이다. 양규는 당시 고려 현종이 직접 “훌륭한 정치가이자 지략가였고, 아버지”라며 그의 유족에게 편지를 쓸 정도로 인정받는 장수였지만, 조선 중기를 넘기면서 잊힌 장수로 남았다.
지승현은 “(영화 ‘실미도’ 중) ‘정치가는 정치를 잘하고, 군인은 군인의 몫을 해내고 각자 맡은 바 끝까지 책임을 지면 나라는 저절로 잘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정신 하나만 보고 갔다”면서 “진정성을 가져가려 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캐스팅이 되자마자 국궁과 승마에 노력을 기울였다. “활을 당길 때 깍지를 끼고 당기는데, 빨리 할 수 있도록 활을 들고 다니면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단순히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훈련된 것처럼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지승현은 16화를 끝으로 퇴장하게 되었지만, 아쉬움은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장에서 불태웠던 것 같다”면서 “(수상한 만큼) 이 드라마도 칭찬해주신 걸로 알고, 지금 해왔던 것처럼 연기를 진지하고 침착하게 잘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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