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대표하는 제조 업체 지멘스가 연간 보고서의 첫머리에 스스로를 ‘기술 기업’이라 정의하고 있다. 170년 이상의 역사를 보유한 지멘스의 주력 사업은 가전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가전에 매달리는 대신 인공지능(AI)·로봇·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제조 현장에 적극 도입하면서 과감한 혁신에 나섰다.
시작은 2007년 미국 솔루션 업체 UGS의 인수였다. 제조 기술력은 강하지만 정보기술(IT) 기술력은 약했던 지멘스는 미국 솔루션 업체를 인수하면서 디지털 솔루션 공급 역량을 추가했다. 올해 CES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지멘스는 소니 등의 파트너와 함께 산업용 메타버스 기술을 선보이며 완벽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지멘스가 제조업 타이틀을 던지고 기술 기업으로 변신한 것은 첨단 기술이 제조 현장에서 구현될 때 더 효과적인 제조업 혁신을 가져온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멘스의 독일 암베르크 공장은 디지털 트윈이 최초로 적용된 스마트 공장으로 생산량의 4분의 3을 자동화 라인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불량률은 0.0001% 수준으로 제로에 가깝다.
이 같은 성과는 일찌감치 AI를 도입해 수많은 데이터를 빠른 시간에 수집·분석한 덕분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아직도 많은 기업이 AI 도입에서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총수들이 적극 관심을 갖고 AI 혁신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지멘스의 기조연설 현장을 찾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존에 수십 년간 해왔던 모델을 버리는 문제에 당면했다”며 “솔루션을 팔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도 ‘소트프웨어 업체로서의 진화’를 선언하며 구글클라우드·아마존웹서비스 등과 협업을 발표하며 제조업의 혁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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