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전기차 수요가 기지개를 켜지 못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을 내리며 돌파구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고객의 구매 부담을 낮춰 시장점유율을 지키려는 전략이다. 다만 연초부터 과열 경쟁 조짐을 보이면서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위인 중국 비야디(BYD)는 15일(현지 시간) 독일에서 전기차 가격을 최대 15% 인하했다. 주력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토3’의 판매 시작 가격은 4만 7000유로(약 6800만 원)에서 4만 유로(약 5800만 원)로 내렸다. 지난해 초에는 테슬라가 가격 인하에 먼저 돌입하며 완성차 업계의 할인 경쟁을 이끌었다면 올해는 BYD가 한발 더 앞서며 주도권을 가져간 것이다.
이에 질세라 테슬라는 이튿날 뒤에 전기차 가격을 낮춰 경쟁에 뛰어들었다. 테슬라는 독일에서 더 나아가 프랑스와 네덜란드·노르웨이·덴마크 등 유럽 전역에서 모델Y 가격을 최대 9% 내리며 할인 공세에 나섰다. BYD가 지난해 4분기 테슬라를 누르고 전기차 판매량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올 들어 가격 할인에 나서자 테슬라도 서둘러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다른 완성차 기업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경우 전기차 시장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전기차 구매 부담이 높아진 가운데 각국 정부의 보조금 축소까지 더해지면서 가격 할인 없이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2위인 현대차그룹도 수익성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점유율을 지키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이달 초부터 미국에서 아이오닉5·6와 EV6 등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현금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의 가동으로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가격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제 살 깎기 식’ 경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리한 가격 경쟁을 벌이다 재무구조가 악화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카를루스 타바르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현실적인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 인하를 지속하는 것은 바닥으로 가는 경쟁이고 결국 피바다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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