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약 43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증시안정기금 투입에 이어 경기 부양을 위해 지급준비율 0.5%포인트 인하 카드를 추가로 꺼내 들었다. 금융시장 안팎에서는 중국 정부 당국이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마련하기 위해 부양책을 추가로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판궁성 인민은행장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급준비율을 다음 달 5일부로 종전보다 0.5%포인트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양호한 통화와 금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준율을 낮춰 시장에 약 1조 위안(약 186조 원)의 장기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법정 지준율이 평균 7.4%로 주요 경제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인민은행이 지준율을 낮춘 것은 지난해 9월 0.25%포인트 인하에 이어 4개월여 만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하가 기대보다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인하 폭이 당초 예상치를 뛰어넘은 만큼 중국 정부 당국의 강한 부양 의지를 드러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민은행이 종전과 달리 지준율 조정을 판 행장 기자회견에서 선제적으로 밝혔다는 점도 중국 당국의 위기의식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인민은행은 이달 22일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 1년물과 5년물을 각각 3.45%, 4.2%로 동결했다. 이에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확산됐고 증시에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상하이종합지수 등 주요 지수들이 4~5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판 행장의 기자회견 직후 홍콩 항셍지수가 상승 폭을 키워 3.56% 오름세로 마감하는 등 시장은 반기는 분위기다. 상하이종합지수도 1.80% 오르며 장을 마쳤다. 블룸버그통신은 “다음 달 춘제 연휴를 앞두고 시장에 유동성을 원활히 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질 듯하다”면서도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시장 전문가들은 지준율 인하를 환영하면서도 증시에 지속적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성기응 소시에테제네랄 수석전략가는 “지준율 인하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만 전날 증시안정기금 발표 등에 비하면 놀랍지 않을 수 있다”며 “정책적 지원 방안이 완전하게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고 밝혔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전날 당위원회 회의를 열고 자본시장 발전에 대한 방침을 발표했다. 관영 중국증권보는 “이날 회의에서 직접적인 부양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정부 당국이 조만간 구체적인 조치를 통해 증시 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헤지펀드 운용역들을 대상으로 주가 하락세를 막기 위해 주가지수선물 시장에서 무분별한 공매도의 제한을 요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정부 차원의 증시 부양책이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점은 시장의 회의론을 뒷받침한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증시 하락을 막기 위해 약 1조 5000억 위안을 투입해 주식을 사들였지만 자금 투입이 끝나자 다시금 약세로 돌아선 바 있다. 당시 서킷브레이커도 도입했지만 투자자 이탈만 부추겼다.
실제로 투자자들이 중국 주식시장에서 채권시장으로 투자자금을 이동하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 정보 업체 지벤어드바이저스의 통계를 인용해 지난해 12월 채권형 펀드에 유입된 자금 규모가 주식형 펀드 유입액의 13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채권시장도 강세로 국채 10년물 금리는 23일 2.506%를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2002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하락(국채 가격 상승)했다. 실제 중국 벤치마크지수인 CSI300 배당수익률과 중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의 스프레드가 22일 기준 마이너스일 정도로 주식이 채권에 비해 저평가돼 있지만 주식 투자 심리는 차갑게 식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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