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 이동통신(5G) 28㎓(기가헤르츠)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을 신규 기간통신사업자, 이른바 제4이동통신사를 정하기 위한 주파수 경매가 25일 시작된다. 선정된 사업자가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28㎓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내놓는지에 따라 시장 안착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로 예기치 못한 단말기 할인 경쟁이 불가피해지면서, 제4이통사는 기존 3사보다 불리한 자본 싸움을 극복할 28㎓ 특화 서비스 출시를 서둘러야 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부터 스테이지엑스, 마이모바일, 세종텔레콤 등 제4이통사 후보 업체 3곳을 대상으로 28㎓ 주파수 경매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주파수를 할당받을 대가로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업체가 사업권을 따낸다. 입찰은 하루에 수 라운드씩 최대 50라운드로 진행되며 이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각 사가 적어낸 입찰가를 비교하는 밀봉입찰로 넘어간다. 입찰가는 최저 742억 원이다.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후보 3곳 모두 자금력에 한계가 있는 탓에 낙찰가가 높아도 1000억 원 내외가 될 것이며 이에 초반 라운드에서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경매에서 이긴 업체는 본격적인 제4이통사 도전에 나선다. 주파수 할당 대가는 물론 향후 3년 간 무선기지국 6000대와 관련 사업 인프라 구축 비용, 또 기존 3사의 망을 빌려쓰는 공동이용(로밍) 대가를 더해 조(兆) 단위의 초기 사업비를 감당해야 비로소 통신시장의 네 번째 플레이어로 진입할 수 있다. 알뜰폰(MVNO) 업체 스테이지파이브가 주도하는 스테이지엑스는 신한투자증권 등, 미래모바일이 주축인 마이모바일은 유럽 최대 통신사 보다폰 등을 끌어들여 투자금을 유치 중이지만 여전히 부담이 되는 금액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28㎓는 기존 3사가 쓰는 3.5㎓와 비교해 통신속도가 빠르지만 사거리가 짧아 망 구축 비용이 크다는 단점도 있다.
이번주 정부가 발표한 단통법 폐지는 제4이통사의 이 같은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후보들의 사업계획에 따르면 제4이통사는 본격적인 28㎓ 사업에 앞서 3사 망 로밍을 통해 3사처럼 5G 요금제 가입자를 모으는 3.5㎓ 사업을 우선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수 년 간 28㎓ 사업을 안정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초기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단통법 폐지로 단말기 할인 경쟁이 벌어진다면 제4이통사도 가입자 유치를 위해 당초 계획보다 마케팅비를 늘려야 하며 그마저도 3사에 비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시장 3위 LG유플러스만 해도 연간 영업이익이 1조 원에 달하는 반면 스테이지파이브와 세종텔레콤은 각각 2022년 55억 원의 적자를 거뒀다. 투자 유치를 감안하더라도 양측의 체급 차이를 극복하기는 힘들어보인다. 단통법 폐지로 제4이통사의 28㎓ 사업 진출 교두보가 불안해지는 셈이다.
3사의 시장 과점이 공고해 단통법 폐지에 따른 마케팅 경쟁이 기대만큼 과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신규 사업자가 들어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4이통사에게 (점유율을) 뺏기기 시작하면 3위 업체인 LG유플러스부터 KT, SK텔레콤까지 연쇄적으로 대응에 나설 텐데 그걸 (제4이통사가) 맞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제4이통사 후보 업체 관계자도 “단통법이 폐지되면 B2C 사업은 3사와의 마케팅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4이통사는 이미 조 단위의 비용 부담에 더해 (3사와의) 단말기 할인 경쟁까지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정책 역효과 우려에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결국 제4이통사가 살아남으려면 3사가 가지지 못한 28㎓ 특화 서비스를 통한 승부를 앞당겨야 한다는 견해에 힘이 실린다. 후보 업체들은 공통적으로 28㎓를 활용해 병원·경기장·공연장·공항·대학·공장 등에 확장현실(XR)이나 자율주행처럼 기존 통신속도의 한계로 구현 불가능했던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를 상용화한 후 기업소비자간거래(B2C)로 28㎓ 전용 단말기와 요금제를 출시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시장을 뒤흔드는 독행기업은 꼭 돈 많은 사업자가 되는 게 아니다”며 “기존과 다른 서비스와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후보 업체들은 저마다 28㎓ 사업을 준비 중이다. 스테이지엑스는 신한투자증권을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였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는 28㎓ 기술 연구개발(R&D)을 수행키로 했다. 연세의료원은 28㎓ 서비스의 주요 수요처로서, 의료 사물인터넷(IoT) 기기·의료 영상·로봇 등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이다. 경기장, 공연장, 국제공항 등 관련 업체들과도 손잡고 28㎓를 적극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폭스콘 계열 모바일 기기 제조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28㎓ 전용 단말기 출시도 준비한다. 아직 국내에서는 28㎓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이 없다. 위성통신 장비 업체 인텔리안테크의 지분 투자도 유치해 관련 기술 협업도 추진한다. 위성통신은 지상망보다 효율적으로 28㎓ 서비스를 구현할 비지상망(NTN) 기술로서 스테이지엑스의 28㎓ 망 구축에 활용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마이모바일은 지난달 보다폰과 제4이통사 사업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보다폰의 28㎓ 기업간거래(B2B) 서비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받고 구체적으로는 보다폰이 호주 등에서 서비스하는 광대역무선인터넷(FWA)을 국내에 적용함으로써 소비자들이 28㎓를 쓸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FWA는 28㎓ 무선망을 활용해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기술로, 일반 와이파이처럼 수신기를 설치해 ‘28㎓ 와이파이’를 만들 수도 있다. 보다폰의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통신장비를 저렴하게 구매함으로써 망 구축 비용 절감도 꾀한다. 해외 투자 유치를 포함해 망 구축을 위한 자본금을 1조 원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제4이통사 도전 재수생인 세종텔레콤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 정부의 이음5G(5G특화망) 사업에 참여하면서 쌓은 B2B 노하우를 바탕으로 B2C까지 포괄하는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세종텔레콤은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과 손잡고 조선소에 5G망을 도입해 디지털전환(DX)을 추진 중이다. 김형진 세종텔레콤 회장은 “경기장, 공연장, 항만, 국방 등 분야에서는 28㎓가 (기존 주파수보다) 효율이 좋다”며 B2B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B2C와 관련해 “풀MVNO(자체 설비를 보유한 알뜰폰 사업자)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단계별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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