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위기에 더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대출 연체율이 바짝 고개를 들며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부실 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도 1년 만에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때 각종 정책자금 등으로 버텨오던 이들이 추가로 빚을 내며 버티다 못해 하나둘 연체와 파산의 늪으로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업대출이 새로운 부실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는 만큼 금융 당국도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0.46%로 전월 0.43%에 비해 0.03%포인트 상승했다. 전년 동기(0.27%)와 비교하면 0.19%포인트 오른 수치로 2019년 11월(0.48%)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체율이 상승한 데는 기업대출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11월 가계대출 연체율은 0.39%로 전월 대비 0.02%포인트 높아진 데 반해 기업대출 연체율은 0.52%로 같은 기간 0.04%포인트 상승했다. 가계대출에 비해 기업대출의 연체율 상승세가 2배에 달한 것이다. 부문별로는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0.01%포인트 내린 0.18%, 중소기업대출은 0.05%포인트 오른 0.61%,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0.05%포인트 오른 0.56%였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연체율이 전체 연체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의 경우 연말을 앞두고 부실 여신을 일부 처분하면서 연체율이 소폭 떨어졌지만 부실 채권 규모가 ‘팽창 일로’인 만큼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중 고정이하여신은 2조 2470억 원으로 전년 말과 비교해 20.7% 증가했다. 총 기업 여신 중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3%로 전년 말 대비 0.04%포인트 상승했다. 이 중 대기업 고정이하여신은 3924억 원으로 전년 말과 비교해 65.6%나 늘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가계대출을 옥죄자 은행들이 기업대출 영업 강화에 나선 것이 부실 위험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신용 비율은 125.6%로 2분기(124%)보다 1.6%포인트 높아졌다. 기업 신용 비율은 지난해 1분기 123%를 기록하면서 외환위기 때인 1999년 1분기의 121.3%를 넘어선 뒤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고금리 장기화에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기업의 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취약 기업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44.8%로 전년 같은 기간(37%)에 비해 크게 늘었다.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손실 흡수 능력을 확대하고 기업부채 연착륙을 위한 건전성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신용 손실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를 통한 손실 흡수 능력 확충을 추진하며 선제적으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며 “연체율이 높은 은행을 중심으로 연체·부실 채권 상매각 등 정리를 확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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