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래 등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1심 선고가 26일 내려진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된 지 1810일 만이다. 약 4년 11개월 동안 290번가량 공판이 진행된 끝에 나오는 판단이라 유무죄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선고 공판을 연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적시된 범죄 사실은 47개다. 그는 2011년 9월 취임 후 임기 6년 동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또 각종 개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성 등 혐의도 있다. 죄명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 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 적용됐다.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재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내 역점 사업인 상고법원 설치, 법관 재외공관 파견, 헌재 상대 위상 강화 등을 목적으로 청와대, 외교부 등을상대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했다는 게 검찰이 내린 결론이다. 검찰은 이들 범행 과정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도 함께 기소한 바 있다. 이들에게는 각각 33개, 18개 혐의가 적용됐다.
이날 선고의 쟁점은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죄가 인정되는 지 여부다. 검찰은 ‘사법행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피고인들이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도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초유의 사건이라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등은 ‘공소 사실 전체가 수사권 남용의 결과로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사법부를 지키는 기념비적인 재판으로 기억된다면 저는 그 고난을 외려 영광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고, 혐의가 방대한 만큼 일반 재판과 다르게 주문이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마라톤 선고’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관측이다. 또 양측이 결과에 상관 없이 항소할 수 있어, 고법·대법원을 거친 확정 판결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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