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유럽연합(EU)의 빅테크 규제에 대응해 자사 애플리케이션마켓 앱스토어 정책을 파격적으로 변경한다. 당국과 업계의 요구에 부응해 앱스토어 결제 수수료를 기존 30%에서 17%로 낮추고, 개발자가 기존 인앱결제(애플 자체 결제시스템) 외 대체결제를 도입하도록 허용했다. iOS 앱을 앱스토어가 아닌 타사 앱마켓에서 유통하는 ‘사이드로딩’까지 허용했다. 한국에서는 규제당국의 제재 움직임에도 아랑곳 않는 애플이 그동안의 글로벌 단일 정책 기조까지 접으면서 유럽 개발자에게만 혜택을 늘리는 만큼 지역 간 개발자·소비자 차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25일(현지시간) 자사의 EU 개발자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공지했다. 애플은 전 세계 iOS 앱 개발자들이 이용자에게 게임, 디지털 콘텐츠 등 유료 상품을 판매할 때 그 결제수단으로 반드시 자사가 개발한 인앱결제만을 사용토록 강제해왔다. 개발자는 이용자 결제액의 30%를 애플에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이에 포트나이트 개발사 에픽게임즈를 포함한 다수의 개발사들이 수수료가 과도한 결제방식을 애플이 강제한다고 문제삼았고 각국 정부도 규제 마련을 추진해왔다. 개발사들이 수익 보전을 위해 수수료율만큼 디지털 상품 가격을 인상하는 관행도 있어, 소비자 역시 피해를 보고 있다.
애플이 인앱결제와 관련한 정부 규제와 업계 요구에 부응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지난주 미국에서도 대체결제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그 수수료율을 인앱결제(30%)와 버금가는 최고 27%로 잡아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유럽에서는 앱스토어 결제 수수료가 기존 30%에서 17%로 낮아진다. 개발자들이 직접 개발한 결제시스템을 앱에 넣거나 웹사이트 같은 외부의 결제 페이지로 접속되는 링크(연결점)를 앱 안에 넣고 이를 이용자에게 알리는 대체결제 제공도 허용한다.
사이드로딩 역시 앱스토어 사상 처음 허용됐다. 구글이 자사 앱마켓 구글플레이가 아닌 원스토어 같은 타사 앱마켓에서도 안드로이드 앱 배포를 허용하는 반면, 애플은 iOS 앱을 앱스토어에서만 유통해왔다. EU에서는 이 정책을 바꿔 타사 앱마켓에서도 iOS 앱을 유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동향에 맞춰 일찍이 지난해 하반기 유럽법인을 세우고 현지 진출을 준비 중인 원스토어 같은 중소 앱마켓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다만 개발자가 보안 등 이용자 보호조치를 갖추도록 하고 이를 관리할 방침이다. 또 사이드로딩을 통해 100만 회 넘게 설치된 앱에 대해서는 초과 설치건당 0.5유로(735원)의 ‘핵심기술 수수료’를 매년 부과할 계획이다.
애플은 올해 3월 새 iOS 버전인 ‘iOS 17.4’ 업데이트를 진행해 이 같은 변경사항을 적용할 계획이다. 비슷한 시기 EU가 시행하는 디지털시장법(DMA)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DMA는 EU가 애플을 포함한 빅테크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이들에게 자사 서비스 우대 등을 금지하는 포괄적 규제다.
한국 앱스토어의 정책 변경은 당장 계획되지 않았다. 한국 역시 규제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가 특정한 결제방식 강제를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애플과 구글에 총 680억 원의 과징금 부과와 시정조치를 추진 중이지만 양사의 입장이 아직 완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가 한국에서 거둬들이는 조(兆) 단위의 앱마켓 매출에 비해 2% 수준의 비교적 적은 과징금을 부과하는 식의 제재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꾸준하다. 방통위는 애플 측이 최근 제출한 제재 관련 방대한 분량의 의견서를 검토 중이며, 이를 마치면 애플 의견을 반영해 제재 안건을 심의·의결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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