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플랫폼 규제법과 관련해 미국 재계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미국 재계의 요청에 따라 미국 상무부가 나설 경우에 통상 마찰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국내외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겠다는 입장인데 설익은 규제가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29일(현지 시간)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부회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가 플랫폼 법안 통과를 서두르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미 상의는 “(한국 정부가) 모든 법안의 전문을 공개하고 미 재계와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충분한 의견 수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했다. 미 상의는 미국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 단체로 정부 정책과 의회 입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앞서 지난달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플랫폼법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감시를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최혜 대우(유리한 거래 조건 요구) 등 부당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해외에서는 구글과 애플 등 4~5개 기업이 규제 대상으로 거론된다.
미 상의는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쟁을 짓밟고 건전한 규제 모델의 기본이 되는 좋은 규제 관행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또 “외국 기업을 임의로 겨냥해 정부를 무역 합의를 위반하는 위치에 처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한국의 플랫폼법이 중국 기업에만 혜택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윌리엄 라인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최근 “한국 정부가 미국 플랫폼을 불공정하게 겨냥하고 중국 플랫폼에 면죄부를 주는 유사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상의의 우려에 앞서 국내에서도 플랫폼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설익은 규제로 인해 자칫 ICT 기업의 성장을 막고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한 임원은 “최근 유튜브와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채널이 사실상 검색 포털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국내 업체들에만 규제를 집중하는 것은 (흐름에) 맞지 않다”면서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할 경우 월간활성이용자수(MAU)를 기준으로 할지 등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역시 “일부 대형 포털은 디지털 전환 사업을 지원해주고 있다”며 “최근 초저가 공세로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하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플랫폼이 규제에 포함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부 방안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내외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거쳐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통상 마찰에 대한 우려도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플랫폼 법과 비슷한 제도를 먼저 도입한 유럽연합(EU) 등에서 통상 이슈는 제기되지 않았다”며 “국내외 이해관계자 의견을 충분히 청취한 뒤 법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같은 국제적 마찰을 회피하기 위해 규제 대상을 통상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는 다음 달 초 플랫폼법 제정안 세부 내용을 공개하고 입법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논란을 줄이기 위해 적용 대상을 최소화하고 3~5년마다 기업을 재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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