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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편의점 상비약 믿었다 아이 아플 때 낭패 볼 수도…

■화석화된 '편의점 상비약' 제도

타이레놀 2종류 품목 취소 불구

2년째 대체약 지정 '감감무소식'

현탁액 품절시 교차복용도 못해

약사 반대에 12년째 13종 묶여

귀향길 앞둔 부모, 약 준비 분주

사진 제공=이미지 투데이




4세 아이를 자녀로 둔 직장인 강 모(41) 씨는 최근 설 연휴를 앞두고 약국을 찾아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을 각각 주성분으로 하는 어린이용 해열진통제를 구입했다. 지난 추석 때 아이를 데리고 지방의 고향집에 내려갔다가 아이 체온이 38도 이상 올라갔는데도 약을 구하지 못했던 기억 때문이다. 강 씨는 “늦은 밤 10㎞도 더 떨어진 거리에 있는 시내에 차를 몰고 가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편의점을 찾았지만 어린이용 해열진통제는 살 수가 없었다”며 “타이레놀 현탁액은 서울에 있는 편의점에도 없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웬만하면 부루펜시럽은 있는데 그곳에서는 두 제품 모두 팔지 않았다”고 말했다.

타이레놀정 160㎎과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의 국내 생산이 중단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안전상비의약품이 지정되지 않으면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설을 앞두고 자녀와 함께 고향을 찾기 전에 상비약을 미리 챙겨야 하는 귀향객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2년 전 품목 2종 취하됐는데도…


8일 보건복지부와 업계에 따르면 현재 편의점 등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비약으로 지정된 품목은 타이레놀정 500㎎ 등 해열진통제 5종, 베아제정 등 소화제 4종, 판콜에이 내복액 등 감기약 2종, 제일 쿨파프 등 파스 2종 등 총 13종이다. 하지만 타이레놀정 160㎎과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은 제조사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2022년 3월 품목에서 취하됐다. 재고 물량이 소진되며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11종으로 상비약 ‘약국 외 판매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알약·분말·시럽 등 세 가지 약의 제형 가운데 시럽 제형의 약만 편의점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이 중단된 타이레놀정 160㎎과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은 알약이고 어린이 부루펜시럽은 시럽 제형이다. 이용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찾이보기 힘들어진 어린이용 타이레놀


편의점에서 구매 가능한 어린이용 해열진통제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타이레놀 현탁액과 이부프로펜 계열의 부루펜시럽 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 2시간 간격을 두고 아세트아미노펜 등 다른 계열의 약과 번갈아 투약할 수 있는데 현재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성분으로 하는 타이레놀정 160㎎과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은 편의점에서 구할 수가 없다. 현탁액 품절시 편의점 약만으로는 내리지 않은 열을 내리기 위해 ‘교차 복용’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부모 입장에서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대체 약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5세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아이 중에는 콜대원키즈펜시럽·챔프시럽 등 하나의 약만 잘 먹고 다른 약은 먹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며 “부모 입장에서도 스틱형으로 낱개 포장돼 짜 먹이는 약이 훨씬 투약하기 쉽다”고 전했다. 이어 “스푼에 따라 먹는 제품의 경우 한두 번 먹이고 유통기한이 지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대원제약의 콜대원키즈펜시럽과 동아제약의 챔프시럽은 주성분이 아세트아미노펜이라 부루펜시럽과 교차 복용도 가능하다.

10년 넘게 13종에 묶인 상비약


시민단체는 더 나아가 2012년 약국 외 판매 제도가 도입된 후 12년째 13종으로 묶여 있는 품목을 확대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 외 판매 상비약은 일반의약품 중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 가능한 약 중 복지부 장관이 20종 내에서 지정한다. 즉 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20종까지는 늘릴 수 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중심으로 상비약 판매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는 24시간 운영되고 점원이 있는 편의점에서만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다. 상비약이 구비돼 있지 않은 지방 소재 편의점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약사 단체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약 업체는 이 이슈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다”며 “상비약 공급가액을 보면 알겠지만 편의점 점주보다는 약사가 훨씬 큰 고객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가 품목 추가 지정, 약사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 조정 위한 기초 조사 중


정부는 현재 상비약 품목 조정을 위한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확대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고 야간에 어떤 의약품이 필요한지, 실제 수급 상황과 접근성은 어떤지 등을 조사하며 조정 준비를 하고 있다”며 “취소된 2개 품목과 관련해 어떻게 할지는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24시간 미운영 지점에도 상비약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그 경우 거리적 접근성은 좋아질 수 있지만 점포 입장에서 24시간 운영 유인이 사라질 수 있어 시간적 접근성은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다”며 “제도가 현장에서 원활하게 시행되도록 하려면 현장(약사)과 협조해가면서 가야 하는 것도 고려 사항”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한국존슨앤드존슨판매 유한회사는 “지난해 다른 회사의 일부 시럽 제품 ‘갈변’ 이슈로 타이레놀 현탁액의 경우 생산량을 늘려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편의점에서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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