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요국 주식시장이 우상향하는 와중에도 홀로 내림세를 나타내더니, 올해에도 약세를 이어가면서 국가적 골칫거리로 떠오르다가 증권 당국 수장까지 바뀐 곳이 있다. 바로 중국증시다. 지금까지 나온 대응책만 해도 무려 2조3000억 위안(약 432조원)의 증시안정기금, 증권사 대상 주식대출 금지, 헤지펀드 매도주문 금지, 마진대출 금지 등 다양하지만 약세를 멈추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다.
시장 안팎에서는 이 같은 중국증시의 약세가 구조적 경제상황에 대한 문제에 기인하는 탓에 쉽게 상황을 반전시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행히 증권당국 수장 교체 소식에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춘제(중국 음력 설) 연휴 이후 추가적 증시 부양책이 등장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일 홍콩 항셍지수는 춘제 연휴를 앞두고 오전 장만 진행한 가운데 3일 연속 하락하며 전일 대비 0.83% 내린 1만5746.58에 거래를 마쳤으며, 장중 한때 낙폭이 2.2%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은 중국 정부가 증시 약세를 타개하기 위한 부양책을 내놓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성과가 없어서 좌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 본토 상하이종합지수는 춘제 연휴 전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전날 1.11% 오른 2865.90에 마감하며 3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상하이 지수의 상승세는 이후이만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 주석 겸 당서기가 지난 7일 경질되고 후임에 우칭 전 상하이시 당 부서기가 임명됐다는 소식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 증시는 지난해부터 본토와 홍콩을 막론하고 분위기가 좋지 않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상하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300 지수는 지난달 6.29% 하락하며 5년래 최저 수준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발발 직후인 2020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이며 홍콩 항셍지수도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서는 항셍지수가 2.59% 하락했으며, 상하이종합지수는 그나마 최근 중국 정부의 대응이 단기적 효과를 보며 연초보다 0.62% 올랐으나 다른 아시아 주요국에 비하면 상승세가 제한적이다.
중국과 홍콩 증시 시가총액은 지난 2021년 정점 이후 약 7조 달러(약 9324조 원)어치가 사라진 상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중국증시 시가총액은 2015년 6월 20%에 육박했으나 이달 초 기준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홍콩증시는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에서 인도증시에 따라잡히며 4위에서 5위로 내려갔다. 이런 가운데 스노우볼 파생상품이 기본 벤치마크로 자주 사용하는 CSI1000 지수가 원금손실 수준인 ‘녹인(knock-in)’ 구간에 도달하면서 매도 압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또 증시 부진으로 담보로 맡긴 주식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증거금 부족으로 강제 매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 증권당국은 최근 들어 악성 공매도 단속, 주식대여 추가 제한 등 각종 대책을 내놓으며 증시 부양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하락세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약 2조3000억 위안 규모 증시안정기금이 투입된다는 소식도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급기야 인민은행이 지난 5일에는 지준율을 0.5%포인트나 인하하며 1조 위안(약 184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기로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6일 증감위 등 금융당국 관계자들로부터 직접 최근 증시 상황을 보고 받은 후 관련 정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날에는 증감위 수장에 대해서도 문책성 교체를 단행했다. 우 신임 주석은 2000년대 중반 근무 당시 규정을 위반한 31개의 금융업체를 폐쇄하는 등 단속과 규제를 주도해 ‘브로커 도살자’란 별명을 얻었던 인물이다. 난징 징흥 인베스트먼트의 펀드매니저 황후이밍은 블룸버그에 “중국 당국이 주식시장 침체를 끝내고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인사”라며 “춘제 연휴 직전 인사를 단행한 것은 중국 최고지도부가 투자자의 손실을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중국증시의 약세가 경제 구조적 차원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부동산경기 침체와 지방정부 부채 문제, 디플레이션 우려 등에 따른 경기 전반에 대한 신뢰 상실 등 중국경제 전반에 대한 문제가 증시에 다 얽혀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당시 시행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풀면서 급속한 경기회복이 기대됐지만, 경기둔화와 씨름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5.2%로 정부 목표치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4%대가 전망되는 등 중국경제 고속성장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날 나온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8% 하락하며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찍었다. 전월(-0.3%)과 예상치(-0.5%)를 모두 크게 밑돌며 지난해부터 이어진 소비 위축이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인의 최고 기호식품인 돼지고기 값은 17.3%나 급락했다. 함께 발표된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동기 대비 2.5% 하락하며 16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시장은 중국 정부가 17일 끝나는 춘제 연휴 직후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주목하는 부분은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 인하 여부에 있다. 인민은행이 이달 5일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렸으나 LPR은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동결한 만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증시 약세로 소비자 수요가 더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증시가 현재와 마찬가지로 약세를 보였던 2015년과 비슷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당시에도 경기 부진과 부동산 시장 침체가 겹치면서 증시가 하락했을 뿐 아니라 리커창 당시 총리 주도로 증시안정기금을 비롯해 각종 자금이 유입된 바 있다.
하지만 시장은 2015년과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팡루이 상하이우솅투자관리 펀드매니저는 “이번에는 경제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당시와 다르다”며 “수십년 간 본 적 없는 변곡점에 와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투자사 Abrdn의 응신야오 아시아주식투자 이사는 큰 부양책 없이는 증시 안정에 회의적이라며 “시 주석과 내각은 경제성장 속도에 대해 안심하겠지만 투자자들은 경제가 정말 약하다고 생각하며, 경제성장률 수치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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