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누구나 재판을 청구하고, 받을 수 있는 기본적 인권이란 의미다. 재판이 지연될수록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한 사회적인 논의가 오래간 이어진 이유기도 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재판 지연 기간은 늘어나고 있지만, 판사 정원법 개정마저 이달 중 그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해 7월 소위를 끝으로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검사 정원법 개정안 역시 논의가 중단됐다. 이달 중순께 열리는 21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법안은 그대로 폐기된다.
법무부는 2014년 이후 8년 만인 2022년에 판사 및 검사 인력 증원 추진에 나섰다. 판사 정원을 △2023년 50명 △2024년 80명 △2025년 70명 △2026명 80명 △2027년 90명 등 총 370명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검사 정원도 매년 40명씩, 2026~2027년엔 50명씩 증가해 총 220명을 증원하는 것이 그 골자다.
정부가 법관 증원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난이도 높은 사건이 증가하는 가운데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사건 처리 절차가 과거보다 복잡해진 탓에 재판 장기화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법무부는 당시 법관 증원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판사 정원 증원으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고, 법원의 인권보호 및 후견적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민사 1심 선고까지 평균 14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고등법원은 11.1개월, 지방법원(항소부)은 10.8개월이 걸렸다. 2018년 말 기준 고법은 8.1개월, 지법은 7.8개월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모두 처리 기간이 증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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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취임과 동시에 재판 지연 문제 해소에 나섰다. 이달 19일 법관 정기인사를 단행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 단독 재판부 1개를 신설해 법원장이 직접 장기 미제 사건 재판을 담당하기로 했다. 해당 재판부는 배석판사가 없는 단독재판부로 기존 민사단독 재판부의 장기간 미제로 남은 사건을 재배당받는다. 해당 재판부에선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에서 정한 자동차·철도 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과 이에 관한 채무부존재 확인 사건이 배정된다. 또 고위법관 인사에서 법원장과 수석판사, 수석부장판사가 먼저 보임해 사무를 분담하고 재판 업무 배정을 직접 챙겨 재판 지연을 줄이도록 했다.
이밖에 법원행정처는 지난 1월 재판장과 배석판사 임기를 조정해 잦은 재판부 교체에 따른 사건 심리 단절과 재판 지연 심화를 막기 위한 대안을 세웠다. 이에 따라 재판장 임기는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배석판사 임기 1년에서 2년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같은 대안 속에서도 법조계는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 지연을 해소해 신속하면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앞서 법무부가 판사 및 검사 증원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판사 정원 증원으로 법원의 인권보호 및 후견적 역할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판사의 과로사 문제 역시 해소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판사 증원 개정안이 그대로 폐기될 경우 올해 법관 인용은 93명에 그친다. 현재 판사 정원 3214명에 미달하는 만큼 새로 인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희대표 사법 개혁에는 이미 시동이 걸렸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보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되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젠 국회가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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