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를 벗으며 한숨을 돌렸지만 회사를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여전히 산적해 경영 시계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주춤한 삼성전자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효율적인 경영 콘트롤타워를 확립하고 기업 활동을 뒷받침할 여건이 우선돼야 하지만 높은 세율, 공익법인 규제 등 각종 제도적 허들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6일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무죄 판결로 삼성 경영 정상화에 속도가 붙겠지만 여전히 ‘코리아리스크’가 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높은 상속세와 법인세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실질 상속세율은 최대 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속·증여세수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0.7%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늘었다. OECD 회원국 중 프랑스, 벨기에와 공동으로 가장 높은 비중이다. 높은 법인세도 기업 연구개발과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4%로 역시 전세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23.2%), 미국(21%), 대만(20%)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약 1~4% 포인트 높다.
그러는 사이 대기업 총수 일가의 주식담보대출은 1년 사이 2조 원 넘게 늘었다. 주식담보대출은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총수 일가가 승계용 자금이나 상속세를 납부 용도로 활용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 집단 72곳 중 상장 계열회사 주식을 보유한 57곳을 살펴본 결과 올 1월 말 기준 주식담보대출은 7조 1908억 원으로, 2022년 말(5조 1681억 원) 대비 2조 227억 원(39.1%) 증가했다.
기업들의 세 부담을 낮추며 투자를 촉진하고 경영권 승계를 돕는 공익 법인이라는 우회로도 국내에서는 사실상 막혀있다. 현행 국내법에 따르면 대기업 공익법인은 계열사 주식을 5% 이상 취득할 경우 증여세를 물도록 강제하며 공익법인 지분을 통해서는 의결권도 행사할 수 없다. 미국, 일본 등 국가는 지분율 20~50%까지 세금을 아예 물리지 않고 있다. 의결권 제한도 한국이 유일하다.
해외 유력 기업들이 공익 법인을 통로로 경영의 연속성을 이루고 사회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MS 주식을 출연해 자선 재단을 설립한 뒤 세계적인 사회문제 개선에 공헌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 또한 첸 저커버그 재단을 통해 메타의 의결권 53.7%를 행사하고 메타버스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는 뾰족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지분을 통해 삼성생명,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고 있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은 1.63%에 불과하다. 삼성의 외부 감시 조직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도 지배구조 개편을 핵심 과제로 추진했으나 현 제도 아래서 뚜렷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법제도 개정도 요원한 상황이다. 경영권 승계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회적 시선에 이를 개선할 동력 자체가 마련되지 않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넥슨 상속세 사태에서 보듯 지나친 상속세는 넥슨 같은 큰 기업마저 뒤흔드는 변수가 되고 있다”며 “또 경영 승계를 무조건적 악으로 보는 시선은 현실적이지 않다. 기업의 긍정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면서 경영 승계를 유도하는 제도 개선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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