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에서 이자율이 낮은 저(低)원가성 예금인 요구불예금이 한 달 새 26조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이탈한 자금들은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예적금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은행들이 싸게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인 요구불예금이 급속도로 줄면서 업권의 자금 조달 비용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전월(616조7480억 원) 대비 약 4.2%(26조360억 원) 줄어든 590조712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말까지만 해도 요구불예금은 전월 대비 3.01%(18조439억 원) 늘어났는데, 한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수시입출금식예금이라고도 불리는 요구불예금은 금리 수준이 3~4%대인 일반 예금과 비교해 0.1~0.2% 수준으로 낮지만, 언제나 입출금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도 분류된다.
요구불예금이 한달 새 급감한 것은 은행 수신금리가 더 내리기 전에 막차를 타려는 수요도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정기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13조3228억 원 늘어난 862조6185억 원에 달했다. 이들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가 전날 기준 3.50~3.55%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3.50%)와 비슷한 수준까지 내렸지만, 오히려 예금을 찾는 투자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정기 적금 역시 같은 기간 6244억 원 늘었다.
연초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들이 연말 회계 관리 목적으로 요구불예금을 늘렸다가 연초 사업투자와 비용 목적으로 돈을 빼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8.6회로 2022년 12월(19.9%) 이후 11개월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요구불예금의 평균 잔액 대비 인출한 금액의 비율이다. 즉,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높다는 뜻은 경제 주체가 요구불예금의 돈을 수시로 빼냈다는 의미다.
문제는 요구불예금과 같은 저원가성 수신이 은행 수익성과 직결되는 '핵심 예금'이라는 점이다. 저원가성 수신이 늘어날수록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유리하고, 저원가성 수신이 줄어들수록 조달비용이 늘어난다. 조달비용이 늘면 대출금리가 더 올라 서민들의 이자 부담까지 가중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증시 투자가 활발해지는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예·적금으로 돈이 이동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자금조달에 대한 부담이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