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 주가조작 일당의 총책이 구속기소된 가운데 이들이 취한 부당이득액이 국내 주가조작 범행 사상 최대 규모인 6600억 원대로 드러났다. 시세조종 세력 20명은 3개팀으로 나뉘어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면서 300개가 넘는 계좌를 동원해 다양한 주문 방법으로 주가를 1년 동안 14배나 급등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하동우 부장검사)는 영풍제지 시세조종 관련 중간 수사 발표를 통해 일당 총책인 이 모(54) 씨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씨는 밀항 브로커에게 4억 8000만 원을 건네고 베트남으로 도피를 시도하다가 지난달 25일 제주도 해상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 외에 시세조종 일당 2명과 이 씨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 2명도 이날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이로써 영풍제지 주가조작에 가담한 일당과 총책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 등 총 16명(구속 12명, 불구속 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일당은 2022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증권 계좌 330여 개를 동원해 가장·통정매매, 고가 매수 주문, 물량 소진 주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총 22만 7448회(약 1억 7965만 주 상당)에 걸쳐 시세조종을 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를 받는다. 이로 인해 영풍제지 주가는 2022년 10월 25일 3484원(수정 종가 기준)에서 4만 8400원으로 약 1년 만에 14배가량 급등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 씨는 조직원 20여 명을 3개 팀으로 나눈 뒤 사무실까지 분리하는 등 다른 팀과의 교류를 최소화했다. 팀이 순차적으로 추가된 데다 극도로 폐쇄적인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기 때문에 검찰은 당초 1개 팀만 인지했다가 다른 팀이 추가 적발됨에 따라 추정 부당이득액을 약 2789억 원에서 6616억 원으로 재산정했다. 이는 1개 상장사 기준으로는 주가조작 범행 사상 최대 규모다. 다만 전체 부당이득액 중 5200억 원만 실현되고 그 외 상당액은 주가조작에 재투입돼 일당에게 직접 귀속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기소된 일당 중 다수는 20~30대의 자칭 ‘MZ 조직원’으로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동향 출신이거나 과거 같은 유사투자 자문회사에서 근무한 것을 계기로 친분을 쌓은 이들은 자신들을 ‘아이들’ 팀이라고 명명하고 사치스러운 소비생활을 영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젊은 조직원들이 범죄수익으로 이른바 ‘한강뷰’ 초고가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수억 원대 슈퍼카를 운전하고 명품과 고급 유흥주점, 해외여행 등에 거액을 탕진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수사 초기에 도주한 여러 명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 중 해외로 도주한 가담자 1명에 대해서는 여권 무효화와 적색수배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이 취한 부당이득은 추징보전 등을 통해 박탈할 계획이라면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금융·증권사범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범죄수익은 한 푼도 챙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재판에 넘겨진 일당 11명은 지난달 19일 2차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대체로 인정했지만 자신들이 총책의 지시를 단순히 따랐을 뿐이며 당시 코스피지수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골판지 업계가 호황을 누리는 등 영풍제지 주가 상승 배경에는 주식시장 환경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이날 “동정 업계의 주가 추이에 비춰봐도 이례적으로 높게 주가가 올라간 상황이었다”면서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주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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