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유일호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이 저출생 대책으로 현금 지원을 하는 것은 효용이 낮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의 중장기 과제로는 인공지능(AI) 같은 선도 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 노동 개혁을 꼽았다.
15일 기재부와 안민정책포럼에 따르면 유 전 경제부총리는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16일 서울 선릉더모임에서 열리는 ‘2024년 안민정책포럼 조찬 세미나’에서 강연한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강의 내용을 보면 유 전 부총리는 “저출생의 원인이 주거와 교육 비용 때문이라면 이를 낮춰주는 대책이 필요하다”면서도 “현금 지원은 그 방법 중 하나지만 지금까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육아휴직급여 인상과 출산전후휴가급여 등 현금성 지원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정책의 효과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주형환 신임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 역시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저출생 대책을 분류하고 평가해 솎아낼 것은 솎아내고 효율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정부는 2006년 이후 18년간 저출생 극복을 위해 예산 3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올해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0.7명도 깨질 것으로 예측된다.
유 전 부총리는 “이민정책을 전향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민을 대폭 늘려야 함을 시사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장기 과제로 △AI 등 선도 산업 육성 △규제 완화 △노동 개혁을 제시했다. 유 전 부총리는 먼저 선도 산업을 육성해 산업 생태계를 다변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해 차세대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규제 개혁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규제 완화는)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고 그래서 어렵지만 경제에 필수적인 만큼 큰 과제를 정하고 이를 모두 없앤다는 각오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규제 개혁을 가로막는 기득권층으로 정치집단과 일부 관료, 일부 경제 기득권층을 꼽았다. 규제 개혁이 어려운 데는 해당 규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층의 무관심도 한몫한다고 봤다.
유 전 부총리는 노동 개혁에 관해 “노동 개혁이 노사 중 어느 일방에만 이득이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며 “성공한 노동 개혁은 대화와 이어지는 타협의 산물임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독일의 하르츠 개혁 등 다른 나라의 성공한 노동 개혁을 벤치마킹 사례로 제시했다.
유 전 부총리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문제점을 언급한 허태균 고려대 교수의 글을 인용해 정부의 ‘정책 불완전판매’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정책 불완전판매는 정부가 국민 삶의 변화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정책을 추진하거나 변화를 알면서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개념이다. 유 전 부총리는 “경제정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식으로 해야 한다”면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실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적 논리라고 하는 것은 흔히 효율성의 문제”라며 “정치는 사회 모든 구성원의 이해 갈등 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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