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둘러싼 금융 당국의 행보를 보면 마치 디지털 척화비를 세우는 것 같아요.”
최근 금융투자 업계 임원과 대화하던 중 나온 이야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승인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사이 비트코인 가격은 차익 실현 매물로 4만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단숨에 5만 달러를 넘어섰다. 전 세계 유동성이 현물 ETF로 꾸준히 유입된 영향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너도나도 새로운 자산군으로 편입된 비트코인 ETF를 담으며 이익을 취하고 있지만 국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들은 관련 상품을 만들 수도, 내다 팔 수도 없다. 금융 당국이 국내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 허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2017년 만들어놓은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비트코인을 기초 자산으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에 승인된 미국 현물 ETF 거래를 막은 것뿐 아니라 기존에 정상적으로 거래되고 있던 캐나다·독일 등에 상장된 현물 ETF도 갑자기 금지시켰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반대 해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금융 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가상자산에 대한 행정부로서의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투자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막기 급급한 현 상황이 조선 후기 수교를 위한 서양의 개항 요구를 거부하고 절대 섞이지 않겠다며 곳곳에 척화비를 세운 흥선대원군의 결정과 오버랩된다. 폐쇄적 입장을 취한 결과 개화 시기는 늦어졌고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졌다. 반면 억지로 개항에 나선 일본은 불평등한 교역 조건 속에서도 서양의 과학기술과 군사력 등에 일찌감치 눈을 뜨면서 강대국 반열에 올라섰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각자의 판단이다.
분명한 것은 변화의 물결에 몸을 싣지 않고는 약인지 독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디지털 척화비를 세우며 스스로 만들어놓은 자본시장법에 갇혀 그 무엇도 하지 않는 현재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정책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적절히 받아들이고 변해야 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나오고 실수도 나온다. 그게 무서워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 금융 당국이 ‘안전’을 이유로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기술 발전에서 배제되지 않았으면 한다. 가상자산 성장과 필연적으로 함께 가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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