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올해 설비 투자를 늘리며 ‘내실 다지기’에 힘을 싣는다.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로 후방 산업인 배터리 업계도 주춤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미래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는 판단이 깔렸다.
설비투자 위해 역대급 회사채 발행…올 8월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생산
18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배터리 생산 설비투자에 지난해와 비슷한 10조 9000억 원을 집행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북미에서만 제너럴모터스(GM) 1·2·3 합작공장을 비롯해 스텔란티스, 혼다, 현대차 합작공장 등 8개의 생산시설을 운영·건설하며 글로벌 생산시설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은 매출 성장에 따른 이익으로 우선 충당한다. 이 밖에도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을 활용해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회사채 단일 발행 기준으로 역대 최대인 1조 6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확정했다. 이 가운데 1조 2800억 원은 합작법인 투자에, 3200억 원은 양극재 구매에 각각 사용할 예정이다.
지속적인 투자로 대규모 생산능력과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고 중국 배터리 업체 등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40GWh 수준이던 배터리 연간 생산능력을 2026년까지 550~570GWh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로 꼽히는 ‘4680(지름 46㎜, 높이 80㎜) 배터리’는 빠르면 8월부터 양산을 시작한다. 이 배터리는 기존 2170(지름 21㎜, 높이 70㎜)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 5배, 출력 6배 높이고 주행거리를 16% 늘린 것으로 테슬라 전기차에 탑재된다.
또 프리미엄 제품인 하이니켈 배터리의 니켈 비중을 기존 80%대에서 90% 이상으로 높여 에너지밀도를 강화하는 등 성능 차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저가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년 하반기부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등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에도 속도를 낸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숨 고르기, 내실 다지기로 테이크오프(반등)할 때 확 올라갈 수 있도록 준비할 것”며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가 경쟁력, 미래 기술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서 우리가 해왔던 대로 지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어려워도 담대한 투자” 주문…북미 중심 생산능력 대폭 확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9일 올해 첫 해외출장지로 삼성SDI 말레이시아 사업장을 방문해 “어려워도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는 위기 속에서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는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주문했다.
삼성SDI는 말레이시아에서 1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삼성SDI는 원형 배터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부터 1조 7000억 원을 투자해 2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025년 완공 예정인 2공장은 올해부터 ‘프라이맥스(PRiMX) 21700’ 원형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지름 21㎜, 높이 70㎜ 규격의 프라이맥스 21700 원형 배터리는 전동공구·전기차 등 여러 제품에 탑재되고 있다.
삼성SDI는 또 미국 인디애나주에 1조 6313억 원을 들여 스텔란티스 합작공장을 건설 중이다. 올해부터는 스텔란티스 2공장과 제너럴모터스(GM) 합작공장의 건설도 시작한다. 각 공장을 짓기 위한 삼성SDI의 투자 규모는 2조 6556억 원, 15억 달러(약 2조 원)에 달한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삼성SDI가 올해 설비투자에 역대 최대 규모인 5조 원가량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SK온은 올해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7조 5000억 원의 설비투자를 진행한다. 이는 미국 포드자동차와의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 테네시공장과 현대차와의 조지아주 합작공장 등에 사용된다. SK온은 올 상반기 헝가리 3공장(30GWh)과 중국 옌청 공장(33GWh)의 증설을 마치고 생산에 들어간다. 이로써 SK온의 연간 배터리 생산 수준은 지난해 88GWh에서 올해 152GWh로 늘어난다. 내년에는 켄터키 공장(129GWh)과 조지아 공장(35GWh)을 각각 가동해 200GWh 이상의 대규모 생산 능력을 갖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