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스코프3’라는 난제(conundrum)와 씨름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글로벌 인덱스 기관인 영국 FTSE 러셀이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짚었다. 스코프3은 기업의 공급망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숨어 있는’ 온실가스를 모두 파악해 기업이 고강도의 탄소 감축 작업에 나서게끔 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스코프3 배출량이 탄소 중립을 위해 감축해야 할 산업 ‘탄소발자국’의 80%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금융 분야의 유력한 기관인 FTSE 러셀조차 스코프3가 “측정 범위가 매우 방대해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이에 따라 기업들이 제대로 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를 ‘난제’라고 표현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스코프3는 그만큼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분석했다.
현재 통용되는 기준인 ‘GHG 가스 프로토콜’에 따르면 스코프3 배출량의 측정 범위는 기업이 구매한 제품과 소유한 자본재, 임대 자산, 전·후방산업과 물품을 운송하고 유통하는 과정, 폐기물, 판매된 제품이 가공되고 사용되는 과정 등 모두를 포함한다. 한마디로 기업이 모든 협력사의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뿐 아니라 회사 임직원이 출퇴근하며 생기는 온실가스, 또 국내와 해외로 출장을 다녀오며 이용한 교통수단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도 파악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스코프3 배출량 파악의 난이도를 크게 높이는 요인이다. 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스코프3가 확대 적용되면 협력사뿐 아니라 협력사의 협력사가 내놓는 온실가스까지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사실상 측정 범위가 무한대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당국은 기업이 스코프3 배출량을 측정할 때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 거꾸로 배출량의 신뢰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코프3로 해도 스코프1·2와 겹쳐 중복 산정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스코프3의 배출량 공개를 포함한 ESG 공시 의무를 자산이 2조 원이 넘는 대기업 상장사에 우선 적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때도 문제는 남는다. 대기업 협력사의 상당수는 중소기업으로 결국 중소기업 역시 자기 회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협력사에서 자신들도 민감한 자료를 쉽게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기업이 컨설팅 업체 등에 용역을 맡겨 배출량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업계는 토로하고 있다. 감축을 해야 할 배출량을 측정하는 것과 온실가스 감축에 드는 비용 모두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이 넷제로(탄소 중립) 계획을 수립해 대대적인 탄소 감축에 나서는 만큼 배출 총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탄소 감축 비용이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SG 강화에 힘을 싣는 미국을 포함해 유럽연합(EU)과 호주·브라질·영국 등의 국가들이 스코프3 배출량의 공시 의무화를 선언했다. 중국도 2026년부터 500대 기업이 스코프3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ESG 공시 강화 방안을 최근 내놓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움직임이 감지된다.
당장 미국에서도 11월 대선 판세와 맞물려 스코프3 적용이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4월 확정할 예정인 기후 공시 기준에서 스코프3를 적용을 완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SEC의 기후 공시 정책 담당자들은 최근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 로비 그룹 관계자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스코프3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면 법적 분쟁에서 SEC 기후 공시의 취약성이 커질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익명의 소식통을 이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력한 ‘반(反)ESG’를 강조하는 만큼 11월 대선에서 그와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업 표를 의식해 한발 물러설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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