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소재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A 경위는 지난해 말 뜻하지 않게 병가를 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취객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이다. A 경위는 당시 술에 취해 지나가던 행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B 씨를 경찰서로 연행했다. A 경위는 조사 도중 B 씨의 한쪽 신발이 벗겨진 것을 발견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B 씨에게 슬리퍼를 가져다주려는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신발을 신기려고 자세를 낮추자 B 씨가 A 경위의 얼굴을 발로 걷어찬 것이다.
지난해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을 폭행·협박해 정식 재판에 넘겨지거나 약식기소되는 이들이 최근 5년 새 최고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주취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 실질적 처벌 강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거나 약식기소된 피의자는 8804명에 달했다. 해당 범죄로 하루 22명가량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이는 2022년(8134명)보다 700명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최근 5년 내 가장 많았다.
이들 가운데 지난해 정식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7602명으로 2022년(6518명)보다 1000명가량 늘었다.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을 폭행·협박했다가 기소된 이들은 2019~2020년 7000명 선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1년 5670명까지 줄었다가 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같은 혐의로 지난해 약식기소된 이들도 1202명을 기록해 3년 연속 1000명대를 나타냈다.
문제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법정에 서는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취객이라는 점이다. 술에 취한 상황에서 경찰·소방관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이를 근절할 만한 뾰족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선 소방·경찰관 사이에서 ‘공권력이 땅에 떨어졌다’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다. 실제로 지난해 소방 방해 사건(257건) 가운데 음주에 따른 건은 215건으로 83.65%에 달했다. 범죄 유형도 폭행이 222건으로 3분의 2(86.38%)를 차지했다.
하지만 처벌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소방 방해 사건 가운데 처분이 이뤄진 83건(수사 진행 161건·기타 13건) 중 실제 실형 처분이 내려진 건 10건뿐이었다. 반면 벌금과 집행유예가 각각 43건, 14건에 달했다. 기소유예(6건) 등까지 포함하면 3분의 2(75.9%)가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종료로 외부 활동이 늘면서 공무집행방해 행위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며 “공무집행방해에 대해 강력한 법 집행·제압이 뒤따르는 외국의 경우 경찰·소방관 등 제복을 입고 활동하는 공무원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술 권하는 문화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라며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나 현실은 정반대이면서 해당 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는 듯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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