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국내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던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34년 만에 신고가를 기록한 일본 닛케이처럼 우리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벗어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지난달 17일 밸류업 계획 발표 이후 8조 원 넘게 순매수하는 등 호응하는 모습입니다.
다만 밸류업 발표가 다가올수록 시장 반응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상장기업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이 충분하냐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정책 발표 내용이 시장 예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실망 매물이 나올 수 있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가 중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추진한다면 이번엔 정말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첫 거래일인 지난달 2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발언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증시 개장식에 참석하면서 의지를 보인 셈입니다. 같은 달 17일 민생토론회에서 다시 한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을 강조했고, 이때 처음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를 유도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언급됩니다.
이때 정부는 상장사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극복하고 시장 평가를 제고할 수 있도록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힙니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기재하도록 하고, 공시우수법인 선정시 가점을 부여하는 등 내용이 간략하게 포함됐습니다. 주주가치가 높은 기업들도 구성된 상품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하는 방안도 거론했습니다.
정부는 실제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액과 비과세 한도를 상향하는 등 증시 수요 기반을 확충했습니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혀왔던 물적 분할, 내부자거래, 자사주, 배당절차 관련 제도 등에 대한 개선 방안을 연일 내놓으면서 의지를 보였습니다. 26일 발표하는 내용은 조금 더 구체적인 세부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참여를 확실하게 끌어내려면 당근과 채찍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주환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장폐지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페널티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인센티브로는 세제 혜택이 유력하지만 총선 일정과 법 개정 절차 등을 고려하면 당장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naming and shaming·이름 거론해 망신 주기)’를 가장 강력한 페널티이자 인센티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지만 기업 참여를 끌어내기엔 역부족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크지 않습니다. 일본 사례를 볼 때 대내외 여건도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증시 저평가를 벗어난 이유는 10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정책을 꾸준히 추진한 가운데 기업 실적과 완화적 통화정책 등이 맞물린 결과로 봐야 합니다. 미국 주가 움직임에 연동된 것도 일본 증시 호황의 배경으로 꼽힙니다.
먼저 지난해 4분기 일본 기업들의 절반 이상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거뒀습니다. 일본은행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면서 엔화 약세가 이어졌습니다. 일본 정부가 대형 손해보험사에 대해 타사와의 관계 때문에 가지고 있는 정책보유주 매각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증권거래소가 내놓은 기업가치 제고 방안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했기 때문에 밸류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점인 만큼 결국 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함께 참여 강도가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긍정적인 것은 국내 기업 가운데 밸류업에 화답하는 움직임이 관찰된다는 겁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주주 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상태입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해 총주주 환원액이 1조 883억 원으로 주주 환원 성향이 51%로 금융주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도 업계 최초로 실적과 상관없이 매년 자사주 1500만 주 이상 소각 계획을 밝히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삼성액티브운용은 이미 1호 밸류업 ETF 출시 계획을 밝혔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시장에서 학습 효과를 얻은 만큼 국내 증시에서도 매수세가 계속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거래소가 관련 인덱스를 준비하는 가운데 국민연금도 기업가치 제고를 노력하는 국내 주식을 발굴하기 위한 위탁운용사 선정에 나섰습니다. 상장 공기업들도 경영평가에 주주가치 제고 항목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26일 밸류업 발표가 예정돼 있는데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발표 이후 하락을 걱정하는 시각도 분명 있다”며 “하지만 단기 이벤트 소진으로 하락하더라도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은 한국 시장 재평가의 시발점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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