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저평가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26일 오전, 외국인들은 별다른 대책에 없다는 실망감에 시장에서 주식을 팔아 치웠다. 원·달러 환율도 덩달아 움직였다. 오전 10시에는 순매도 규모가 1053억 원에 달했다. 이날 장 마감 기준으로는 외국인들이 900억 원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환율은 1331.1원으로 전 거래일(1331원) 대비 거의 변동이 없었다.
미국과 일본 증시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한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에도 반등하는 수출(반도체)과 탄탄한 대외 지급 능력이 외환시장의 방파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날까지 원·달러 환율은 전월 대비 3.5원 하락하며 46.6원 오른 지난달보다 변동 폭이 작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30원을 기준으로 좁은 대역에서 횡보하고 있다”면서 “환율 상·하방 요인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비슷하게 맞물리고 있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시장만 놓고 보면 해외시장의 랠리는 원화 가치 약세 요인이다. 반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에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르게 유입된 것은 강세 요인이다.
주목할 부분은 예상보다 강한 미국의 경기 반등에도 환율이 크게 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2.1%로 0.6%포인트 올렸지만 한국은 0.1%포인트(2.2%→2.3%) 상향하는 데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의 성장률을 0.6%포인트 올린 2.1%, 한국은 0.1%포인트 내린 2.2%로 제시했다. 한미 양국의 회복 속도 격차가 벌어지며 달러 강세 요인이 더해졌는데도 환율이 1330원대를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기업은 환율의 추가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1월 기업 등 거주자 달러화 예금을 전월 대비 57억 8000만 달러 줄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환율 안정세의 해답은 반도체가 이끄는 강한 수출 반등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내수 부진으로 경제 회복 속도가 미국과 벌어지고 있지만 환율에 직결되는 수출이 예상보다 좋아 시장 불안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수출 전망도 좋아 당장의 달러 유입도, 앞으로의 전망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은은 22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상수지 흑자 폭 전망치를 490억 달러에서 52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순대외금융자산도 안전판 역할을 해주고 있다. 대외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순대외금융자산은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의 46% 수준까지 올라섰다. 한은 관계자는 “외부 충격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뜻으로 투자자들도 한국의 경제 기초 체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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