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상담사 아니고 엔지니어 맞느냐’는 말도 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저를 지정해 수리 서비스를 신청하는 단골 고객도 생겼습니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 생활 가전제품 수리를 맡는 엔지니어는 금녀(禁女)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생활 가전 자체가 크고 무거운 데다 전자 제품을 남성들이 더 잘 다룰 것이라는 선입견이 더해진 결과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고 있다. 여성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여성 가전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디지털강릉센터에 소속된 김경은 프로는 이러한 선입견을 깬 사람 중 한 명이다.
김 프로가 가전 엔지니어가 되기까지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2003년 강원도 용평 소재의 리조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6년 삼성전자서비스에 휴대폰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 ‘제2의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2021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삼성전자서비스가 고객 수요에 맞춰 여성 가전 출장 서비스 엔지니어를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프로는 “당시 센터장이 매사 긍정적인 자세와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저를 추천했다”며 “38세에 다시 한번 도전을 결정하고 직무를 변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가전 수리 서비스 신청을 여성 고객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여성이자 주부인 저를 굉장히 편하게 생각한다”며 “친화력과 세심한 고객 응대가 여성 엔지니어의 최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친화력과 세심함만이 그의 무기는 아니다. 엔지니어로서 탄탄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김 프로는 “이전에는 휴대폰 단일 제품의 기술 역량만 필요했는데 가전의 경우 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TV까지 제품 종류가 워낙 다양해 더 많은 제품의 기술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며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남아 계속 분해하고 점검해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 프로는 가장 자신 있는 수리 품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단숨에 냉장고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 출장 서비스를 했을 때 무거운 제품을 옮기는 요령이 없어 힘으로만 옮기려다 보니 어깨나 팔에 멍이 들기도 했다”며 “지금은 제품을 지그재그로 옮기는 요령도 생겼고 회사에서 개발한 에어 리프트 기기를 사용해 제 몸보다 2~3배는 큰 냉장고도 수월하게 들어 옮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4년 가까이 여성 가전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잊지 못할 일도 많이 겪었다. 김 프로는 군부대에 냉장고·TV 수리를 위해 처음 방문하자 장병 모두가 놀랐던 일화를 꼽았다. 김 프로를 딸처럼 챙겨준 고객도 있다. 그는 “며칠 전 위염을 심하게 앓았는데 한 할머니 고객께서 약을 손수 챙겨주시고 저녁에 ‘외지에 있는 우리 딸도 자주 앓는다’며 안부를 물어보셔서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다”며 “손수 만든 꽃 장식을 손에 쥐여주신 고객도 기억 난다”고 했다.
김 프로의 목표는 삼성을 대표하는 최고의 엔지니어다. 김 프로는 “많은 고객들에게 여성도 엔지니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며 “도전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귀감이 되는 멋진 엔지니어가 되고 차후에는 여성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자리에서도 근무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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