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2023년 합계 출생률이 0.72로 떨어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4분기 합계 출생률은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초저출생’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 각층에서 해법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이에 맞춰 저출생 해법을 내놨는데요. 그 내용이 “대기업 일자리를 늘려라”여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KDI는 저출생은 물론 과도한 수도권 집중 현상 역시 대기업 일자리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KDI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 ‘KDI FOCUS,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주요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가장 낮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기업 일자리 증가가 출생률 및 지역 생산성을 높이는 데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25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 비중은 13.9%였습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가 약 2700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약 375만 명이 2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셈입니다. 참고로 국내 통계에서는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기업’으로 분류하지만 OECD는 250인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근로자 비중은 관련 통계를 제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2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OECD 평균인 32.2%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수치이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와 함께 3050 클럽(1인당 국민총생산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으로 꼽히는 나라들은 이탈리아(23.7%)를 제외하고 대기업 근로자 비중이 모두 40%를 넘겼습니다. 일본의 대기업 근로자 비중이 40.9%, 독일이 41.0%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46.0%, 47.0%입니다. 미국의 경우 250인 이상 사업자에서 일하는 근로자 비중이 57.6%에 달했습니다.
사실 OECD 국가 중에서 대기업 근로자 비중이 20%를 밑도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그리스(17.0%) 뿐입니다. 그리스는 제조업이 취약하고 관광산업이 발달해 영세 자영업자 비중이 상당히 높은 나라로 유명합니다.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면 근로자들에게 법이 보장하는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과 같은 제도를 적절하게 보장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누군가가 육아휴직을 사용해도 상대적으로 쉽게 다른 구성원들이 그 빈자리를 매울 수 있지만 소기업에서는 그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KDI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필요할 때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300인 이상 기업 종사자의 95.1%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5~9인 기업에서는 수치가 47.8%로 떨어졌습니다. 10~29인 사업장의 경우 육아휴직을 원할 때 쓸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50.8%에 그쳤습니다. 출산전후휴가 사용 여건 역시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83.0%가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답한 반면 10인 미만 기업에서는 그 수치가 66.1%로 하락했습니다. 앞선 OECD 조사에서 우리나라 근로자의 13.9%만 250인 이상 기업에서 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로자 상당수가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법으로 출산·육아 환경을 보장한다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집중 해소의 실마리도 대기업 일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KDI가 각 시·도의 기업규모별 일자리 비중과 생산성을 비교해 회귀분석해봤더니 각 시·도의 대기업 고용 비중과 지역 평균 생산성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300인 이상 사업체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지역의 평균 생산성이 연간 41만 원 늘어나는 식입니다. 20인 미만의 영세소기업 비중은 1%포인트 줄어들 때마다 지역 평균 생산성이 84만원 늘었습니다. 각 지역에서 영세기업 비중이 줄고 대기업 비중이 늘어날수록 평균 생산성이 개선된다는 의미입니다. 고 선임연구위원은 “지역에 큰 사업체가 많을수록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도 적어질 것”이라며 “수도권 집중이 계속되는 것은 비수도권에 생산성이 높고 규모가 큰 사업체가 적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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