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2014년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직접 진두지휘해 NH투자증권을 탄생시켰다. 그는 지금은 허물어진 구사옥(현 한화증권 위치) 4층 강당에 지점장과 부서장 이상을 불러 모아 “이제 더 이상의 지배권 변동은 없다”고 선언했다. LG증권에서 우리투자증권, 다시 NH투자증권으로 몇 차례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직원들에게 ‘독립 경영을 보장하겠다’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며 증권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겠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실제 초대 김원규 사장에서 정영채 사장으로 이어진 10년간 임원들도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서 상당 기간 몸담지 않으면 자리를 넘볼 수 없었다. 대우증권에서 건너온 정 사장은 자기 사람을 단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다. 농협에서 증권으로 파견하는 임원도 제한적이었다. 그만큼 자본시장에서의 전문성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년 가까이 증권사에서 근무해도 투자은행(IB) 업무만 주로 했다면 파생상품이나 트레이딩 사업부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금융그룹의 매트릭스 체제를 강조한 KB금융과 신한금융조차 은행과 증권업의 차이를 인정하고, 은행 부행장을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로 보내는 관행을 끊었다.
11일이면 NH투자증권의 새 선장이 발표된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린 후보군은 3명(윤병운(1967년생) NH투자증권 부사장, 유찬형(1961년생)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 사재훈(1964년생) 전 삼성증권 부사장이다. 이 중 농협 출신 인사가 차기 사장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되고 있다. 증권업 경력이 전혀 없어 임추위에서 사외이사들의 반발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이 공기업 CEO와 임원으로 낙하산처럼 투하됐다. 전문성 결여에 따른 공기업 부실은 국민 피해로 되돌아왔다. 논공행상으로 농협 출신의 ‘올드보이’를 선임한다면 내부 직원들의 상실감과 투자자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에서 하반기로 예정됐던 정기 검사를 앞당겨 차기 CEO 선임 절차가 적절한지, 전문성이나 업력에 대한 고려 외에 농협중앙회의 입김이 작용하는지 들여다보는 이유다.
업황이 침체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해 10대 증권사 중 3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CEO가 교체됐다. 26년 만에 떠난 최현만 전 대표를 비롯해 김신·박정림·정영채 등 금융투자 업계를 주름잡던 82학번, 1963년생 CEO들이 줄줄이 용퇴했다. 그 자리를 채운 건 1967년생(1명), 1968년생(2명), 1969년생(2명) 등 젊은 CEO다. 그런데 단 한 곳만 1963년생이 떠난 자리를 1961년생이 이으려고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