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마인츠대의 우구어 자힌 교수는 동료 연구자이자 부인인 외즐렘 튀레치 박사와 2008년 생명공학 기업인 바이오엔텍을 창업했다. 두 의과학자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활용하면 암과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도전에 나섰다. 문제는 돈이었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장기전일 수밖에 없는 연구에 거금을 넣을 초기 투자자를 찾기 힘들었다. 이때 단비가 된 것이 바로 유럽의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인 ‘호라이즌 유럽(옛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이었다. 총 1000만 유로를 받은 바이오엔텍은 이를 마중물로 민간 투자금까지 모아 연구를 지속했다. 이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인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을 초고속으로 만들어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자힌 박사는 2021년 한 의학 콘퍼런스에서 “지원금의 혜택을 받아 mRNA 기술을 키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오는 물론이고 환경·정보기술(IT)·에너지·농업 등 다양한 과학 분야의 민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호라이즌 유럽의 시작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은 단일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 힘든 대규모 R&D 지원을 위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역내 혁신 기술 연구자들을 지원해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이 사업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초기에는 5년 단위로 38억~66억 유로 수준의 예산을 지원했으나 2007년부터는 7년 단위로 지원 기간을 늘리고 예산도 대폭 증액했다. 2021년~2027년 진행될 9차 사업의 총예산은 955억 유로(약 137조 원)에 달한다.
유럽연합(EU)이 대규모 예산을 쏟아부어 R&D 지원 사업을 펼치는 것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경제 규모가 작아 미국·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특히 요즘에는 EU 회원국뿐 아니라 일본·캐나다 등 비회원국에도 러브콜을 보내 첨단 기술 연구개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역시 호라이즌 유럽의 준회원국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우리도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필요한 분야에 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R&D의 국제 협력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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