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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치료 못하니 악몽…견딜 수 없어 떠난다” 필수과 의사의 고백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부교수, 19일 SNS 통해 사직 의사 밝혀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에서 뇌종양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 중인 어린이 환자와 주먹을 맞대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통령실




"매일 악몽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불과 한달 만에 이 땅의 의료가 회복불능으로 망가져 버렸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네요. "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부교수가 19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과 한 달 전 팀이 전부 있었을 때에는 어떤 환자가 와도 무서울 것이 없었는데 이제 환자를 보는 게 무섭고 괴롭다"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정부가 심뇌혈관질환에 5조 원을 투입하는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을 늘리겠다고 선언한 다음날 빅5 병원에서 필수의료 분야의 대명사 격인 흉부외과 교수(전문의)가 공개적으로 사직한 사연이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최 교수는 "저는 가장 행복한 흉부외과 의사였다"며 "학생, 전공의 시절 좋은 교육을 받았고 외과의사로 독립했을 때 최고의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나의 노력이 그대로 환자의 생명으로 연결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생에 걸쳐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끼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전공의, 학생들에게 적극 권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겨우 버텨오던 흉부외과는 남은 자들이 온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얼마간 버티다가 결국 문드러져 버릴 것이다. 이 땅의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포기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 보느니, 차라리 의업을 떠난다"고 적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마저 사직하고 병원을 떠나면서 수술 건수가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폐암 환자들은 기약없이 수술을 기다리면서 크나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그는 "인턴, 전공의, 전임의 없이 수술을 하고 병동을 지켜온 지 이미 한 달이 넘었다"며 "외래에서 만난 환자에게 울컥 해서 '나도 미치겠어요. 우리 팀만 다 있었으면 하루에 몇 명이라도 수술할 수 있다고요. 나도 정말 수술하고 싶어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요'라는 말을 내뱉고는 제가 더 놀랐다"고 털어놨다. 밤새워 수술하는 데 익숙해진 터라 체력적으로 힘든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으나, 전공의와 전임의가 사직한 후 혼자서 수술할 수 있는 환자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다 보니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심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그는 "작년만 해도 ‘폐암 진단 후 1달 이내 수술하는 비율’을 따졌는데 지금 폐암 환자들은 기약없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며 "불과 한 달 사이 차이가 너무 커서 정신을 온전하게 가다듬지 못하겠다. 당직이 아닌 날도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제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어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도저히 못 견뎌 사직서를 낸다. 제가 수술하기로 약속했던 환자들까지는 어떻게든 해결겠지만 더 이상 새로운 환자와 의사 관계를 만들지 않을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에 대해서도 "졸속, 강압적으로 진행해선 안 된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환자 한 명의 병도 정확하게 진단한 후 수술 계획을 세우고 수술을 견딜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한다"며 "온 나라의 의료 체계를 바꾸는 것은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정책의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 정책으로 인해 한 나라의 의료가 붕괴된다면 아마추어 정부일 뿐이라는 비판도 쏟아냈다. 이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의사를 가장 편하게 빨리 볼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어려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나라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며 "모든 것이 전공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정부의 무자비한 정책으로 (전공의) 모두 미래에 절망한 채 자발적인 사직을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또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미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여전히 위협과 명령으로만 그들을 대하고 있다"며 "환자 수 천, 수 만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제 인생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의업, 제가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던 제 삶의 목적을 포기한다"고 적었다.

최 교수가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히기 하루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해 어린이병원을 둘러보고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진에 감사를 표하는 한편, 간담회를 열어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 공백 대책과 의료 개혁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윤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의료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인력 확대는 필수적"이라는 의사를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증원을 단계적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면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졌다면 좋겠지만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역대 정부들이 엄두를 내지 못해 너무 늦어버렸다. 매번 이런 진통을 겪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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